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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한겨레 프리즘] ‘자유시장’ 이데올로기의 조종 / 고명섭

등록 2010-11-23 21:29

고명섭 책·지성팀장
고명섭 책·지성팀장
1638년 서른 살의 존 밀턴은 유럽 여행 중에 이탈리아 피렌체에 들렀다. 그곳에서 그는 저명한 천문학자 갈릴레오 갈릴레이를 만났다. 갈릴레오는 교황청의 종교재판에 회부돼 단죄받은 뒤 5년째 가택연금 상태에 있었다. 75살의 노학자는 눈이 완전히 멀었고 자유를 박탈당한 몸은 불면증에 시달렸다. 밀턴은 갈릴레오를 보며 진리가 독단에 감금당했다고 느꼈다.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밀턴을 기다린 건 청교도혁명(1640~1660)이었다. 혁명의 선봉에 섰던 밀턴은 의회를 장악한 장로파가 ‘출판허가법’이라는 사전검열제를 도입해 혁명을 동결시키려 하자 갈릴레오의 폐소공포증을 느꼈다. 이 검열의 시대를 향해 던진 연설문이 바로 ‘언론 자유의 경전’으로 불리는 <아레오파기티카>다.

밀턴은 출판물 검열을 ‘사상의 자유시장’을 봉쇄하는 짓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사상을 상품에, 검열을 독점에 비유했다. “진리는 허가와 규제에 의해 독점되는 상품이 아니다.” 밀턴은 사전검열 행위가 적들이 모든 항구와 포구를 막아 상품의 수입을 방해하는 것보다 더 큰 손실을 줄 것이라고도 했다. 밀턴의 주장은 당시 시민들 사이에 널리 퍼져 있던 특권층의 상업적 독점에 대한 반감에 기댄 것이었다. 그는 자신 있게 말했다. “진리와 거짓이 서로 맞붙어 싸우게 하라. 자유롭고 공개적인 경쟁에서 진리가 패배하는 일은 결단코 없다. 진리가 승리하는 데는 정책도 필요 없고 전략도 필요 없고 검열도 필요 없다. 진리에게 자유로운 공간만 허용하면 된다.” 밀턴의 강력한 수사는 ‘자유경쟁’과 ‘자유시장’에 대한 시민의 열망을 선명하게 보여주었다.

서구 세계에서 자유시장 이념은 이렇게 수백년 동안 전근대적 특권과 억압에 대항한 투쟁의 무기였다. 밀턴보다 100년 뒤에 살았던 애덤 스미스가 <국부론>(1776)에서 자유경쟁을 이야기한 것도 지배계급의 독점과 반칙에 대한 이론적 저항이었음은 물론이다. 그랬던 것이 200년이 지난 뒤 사태가 정반대로 뒤집혔다. 지난 30년 사이 자유시장주의는 ‘자유’와 ‘시장’이라는 이름으로 강자는 더욱 강하게, 약자는 더욱 약하게 만드는 것을 정당화하는 지배계급의 이데올로기 이상도 이하도 아닌 것이 되고 말았다. 부자의 세금을 감면하라. 부자가 더 부자가 되도록 시장을 재편하라. 그러면 더 커진 부가 밑으로 흘러내려 가난한 사람까지 부자가 될 것이다. 그러나 그 신자유주의 주문을 외는 동안 부자와 가난한 자의 거리는 멀어졌고 세상은 전보다 훨씬 더 불안해졌다.

자유시장주의 이념으로 영국을 강퍅하게 바꾸었던 마거릿 대처는 인간 각자의 이기심이 사회 발전의 동력임을 강조하면서 이런 말을 했다. “사회 공동체 같은 것은 없다. 오직 개인만 있을 뿐이다.” 그러나 장하준 교수의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는 이 이기심이라는 짐승을 풀어놓자는 신자유주의 전략이 마침내 파산했다고 선언한다. “인간은 사회라는 울타리 없이 고립된 이기적 존재로 살아온 적이 없다.” 이렇게 단언하는 장 교수의 책은 국내에서 출간되자마자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가 지난 몇 달 동안 누린 베스트셀러 1위 자리를 단숨에 이어받았다. 샌델과 장 교수의 책은 모두 ‘공동체 가치’의 회복이 절실하다고 말한다. 뿔뿔이 흩어져 각자 제 잇속만 챙기는 이기적 개인의 삶으로는 사회도 구할 수 없고 나 자신도 구할 수 없다. 이제 공동체를 구함으로써 나를 구하는 일에 나서자. ‘자유시장’ 이념에 조종을 울리자. 그 권유에 지금 이 나라의 책 읽는 사람들이 맹렬하게 호응하고 있다. michae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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