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길 오피니언넷 부문 편집장
1983년 5월5일 어린이날이었다. 여자친구를 만나려고 버스를 탔던 나는 라디오에서 갑자기 “이것은 실제 상황입니다”라는 다급한 목소리와 함께 발효되는 공습경보에 정신이 아득해졌다. 대학생이던 나는 ‘전쟁이 났는데, 집으로 돌아가야 하나’라는 의문부터 시작해 ‘이제 전쟁에 끌려가면 인생 종치겠구나’라는 절망감까지 생각이 널뛰었다. ‘이판사판인데 여자친구나 마지막으로 만나자’ 하는 생각에 몸은 그대로 버스에 남았고, 여자친구도 약속 장소에 그대로 나와주기를 빌었다. 얼마 지나 상황은 중국 민항기가 납치돼 한국에 불시착한 것으로 정리됐다.
그날 밤늦게까지 여자친구와 술을 마시며 ‘우리 인생이 우리 의지와 상관없이 결정될 수 있다’는 불투명한 미래의 한반도에 사는 쓸쓸한 청춘들 얘기를 한 것 같다. 여자친구와의 설레는 데이트와 실제 공습경보라는 얄궂은 상황 앞에서 비로소 한반도 분단 상황을 뼈저리게 체험한 것이기도 했다. 당시 학생운동을 하다 투옥돼 있던 한 친구는 감옥에서 들려오던 이 공습경보에 ‘죽음’을 느꼈다고 고백했다. 한국전쟁 당시 좌파 성향 인사들을 몰살한 보도연맹 사건의 기억 때문이다.
세월이 사반세기도 넘게 흐른 지난 23일 오후 연평도가 불바다가 됐다. 그것은 진짜 ‘실제 상황’이었다. 한국전쟁 이후 수많은 남북 충돌이 있었지만, 민가가 포격당하는 ‘전시상태’는 처음이다. 상황이 위중한데도 나에게는 83년 당시의 절박감이 느껴지지 않았다. 무력감이었다. 한반도의 생명과 재산이 다른 이들에 의해 끌려가는 상황 때문이다. 민가를 포격한 것은 어떤 이유로도 정당화될 수 없다. 북한은 비난받고 제재받아야 마땅하다. 하지만 그런 북한은 우리 분단체제에서 언제나 상수였다. 특히 90년대 핵개발 시도 이후 북한은 더욱 그랬다. 굳이 이해하자면 ‘누가 나 좀 말려달라’는 것이 북한의 전략이자 전술이었다.
노태우 정부 이래 한국의 역대 정부는 북방정책, 남북화해 혹은 햇볕정책이라는 이름으로 북한과 한반도 분단체제를 관리해왔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한국 정부는 북한과 한반도 분단체제를 관리할 지렛대를 상실했다. 특히 천안함 사건 이후엔 북한에 대한 영향력과 통로는 오로지 중국에만 주어진 상황이다.
그래서 연평도 이후 해결책도 이제 남북한이 아니라 미국과 중국에 있다고 외국의 전문가들은 일제히 지적한다. <거대한 체스판>에서 유라시아 대륙의 패권 다툼을 미국에 조언한 즈비그뉴 브레진스키 전 백악관 안보보좌관은 <파이낸셜 타임스>에서 해결책인 중국에 대한 접근이 적대적이어서는 안 되며, 대중들의 적의를 만드는 것은 미-중의 공통 이해관계가 아니라고 지적했다. 에이던 포스터카터 전 미 국방장관 보좌관은 같은 신문에서 ‘베이징은 워싱턴의 음악에 맞춰 춤을 추지 않을 것이며, 서울에 대해서는 더욱 그럴 것’이라고 중국이 열쇠를 쥔 상황을 강조했다.
9·11 테러 직후 석학 슬라보이 지제크는 ‘진짜 사막에 온 것을 환영합니다’라는 유명한 칼럼에서, 미국인들은 9·11을 통해 미국도 전세계의 다른 곳처럼 똑같이 위험지대라는 것을 깨닫게 됐다고 지적했다. 미국이 안전지대라는 인식은 미국 바깥에 폭력과 분쟁을 묶어둠으로써 생긴, 영화 <매트릭스>의 가상현실 같은 것이라며, 이제 고통스런 현실을 직시하든지, 아니면 더욱 안으로 문을 잠가 가상현실에 더 도취되든지 택일하라고 강조했다.
연평도 사건 직후 “확전되지 않도록 관리를 잘하라”고 했다던 이명박 대통령은 갑자기 “몇 배로 응징하라” “행동으로 보여줘야 한다”고 말했다. 행동으로 보여줘 몇 배로 응징한다고 연평도 이후 해결책이 나올 수 없고, 그럴 수도 없다는 것은 삼척동자도 안다. 연평도는 그동안 잊고 있던 한반도의 고통스런 분단 현실을 다시 일깨워주고 있다. 더욱 우려스러운 것은 이런 연평도를 관리할 지렛대가 우리에게서 점점 멀어지고 있다는 거다. 이런 현실부터 깨닫는 것이 연평도 이후 해결책의 첫걸음이다.
정의길 오피니언넷 부문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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