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세 영화감독
영화 <형사>를 만들 때다. 4년간의 뉴욕 생활을 정리하고 한국에 오니 영화계가 싹- 바뀌어 있었다. 연이은 한국 영화의 호황으로 사람들이 넘쳤고, 돈이 넘쳤다. 한국 영화 앞에 할리우드 영화들도 힘도 쓰지 못했다. 빵빵한 자신감으로 넘쳤다. 전작 <인정사정 볼 것 없다> 때만 해도 영화계에는 어른어른 어두운 그림자가 있었는데, 장밋빛 일색이었다.
촬영장엔 아들 등록금 걱정에 전전긍긍하는 나이 든 스태프도, 어떻게 하면 밥 한 공기를 더 먹을 수 있을까 눈치 보는 젊은 스태프도 없었다. 현장에는 젊음이 넘쳤고 먹을 것이 넘쳤다. 정말 내가 바라던 바였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재미가 없어졌다”. 촬영이 끝나면 나도 모르게 저절로 내 입에서 툭 튀어나왔다. 모든 것은 순조로웠다. 전에는 그렇지 않았다. 촬영은 쪼들리는 제작비로 계획과 달리 늘 어긋났고, 러시 필름을 보면 언제나 불만스러웠다. 그런데 그때는 촬영을 하는 것 같았다. 영화 현장에 있는 것 같았다. 그런데 <형사> 현장에선 그런 기분이 사라졌다. 왜지?
영화만 생각하면 됐다. 전에는 제작비를 절감하고, 필름을 아끼기 위해 화장실까지 쫓아가면서 연기자와 리허설을 했다. 다음날 촬영을 위해 밤중에 촬영부들을 깨워 이동차 미는 속도를 초시계로 재며 연습했다. 불만은 없었다. 오히려 한 번 더! 하자고 한 것은 스태프들이었다. 촬영 때는 적은 인원으로 화면을 채우기 위해 수시로 나와 스태프들은 옆모습, 뒷모습, 원경에 기꺼이 등장했다. 현장에는 연출부다 촬영부다 연기자들이 따로 있지 않았다. 거기에는 오직 한 편의 영화를 위해 모인 사람들만 있었다.
<형사> 현장에는 네 일 내 일이 정확하게 구분되어 있었다. 시스템이 갖춰진 것이다. 전에는 감독이, 아니 누구라도 좋았다. 막내 스태프일지라도 누군가 “촬영!” 하고 외치면 너나 할 것 없이 감독이든 연기자든 이동차를 들고 조명을 날랐다. 그리고 카메라가 돌아갔다. 그런데 <형사> 현장에는 각자의 부서가 자신의 자리를 고고(孤高)하게 지켰다. 아무리 바빠도. 그것이 시.스.템.이라는 듯.
전에는 영화감독만 하면 됐다. <형사> 때는 매일 각 부서에서 올라오는 불평불만을 접수하고 상담하는 것이 또다른 나의 일이었다. “나는 누구와 맞지 않습니다” “○○부서가 비협조적입니다” “○○부서는 ○○이 준비 안 되면 촬영을 할 수가 없습니다” 등등.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디졸브되는 장면은 <첫사랑> 촬영 현장이다. 갑작스런 제작사의 재정 악화로 촬영은 늘 지연되었고, 어쩌다 촬영이 잡힌 날조차 연기자들의 스케줄마저 꼬여 새벽에 집합해 밤에나 촬영을 시작하기 일쑤였다. 자연 스태프들의 입이 불거져 나올 수밖에 없었다. 그때 지금은 작고하신 유영길 촬영감독께서 스태프들에게 한 일갈은
“우리가 여기 왜 왔어! 사람들 때문에 왔어? 돈 때문에 왔어? 영화만 봐!”
“사람을 보지 말고 십자가를 봐라!” 사도 바울이 어느 교회를 방문했을 때 내가 옳네! 네가 그르네! 다투는 교인들을 향해 한 말씀이다. 요즘 신문을 보든 방송을 보든 곳곳에서 자신만의 목소리들을 높이는 것을 보면, 저절로 <형사> 때 촬영 현장이 겹쳐진다. 딱 국민들만 보면 되는데… 나라만 생각하면 되는데… 유 기사님의 일갈처럼 영화만 보면 되는데…. 왜 달을 보지 않고 언제나 가리키는 손가락들만 볼까…. 이명세 영화감독
“사람을 보지 말고 십자가를 봐라!” 사도 바울이 어느 교회를 방문했을 때 내가 옳네! 네가 그르네! 다투는 교인들을 향해 한 말씀이다. 요즘 신문을 보든 방송을 보든 곳곳에서 자신만의 목소리들을 높이는 것을 보면, 저절로 <형사> 때 촬영 현장이 겹쳐진다. 딱 국민들만 보면 되는데… 나라만 생각하면 되는데… 유 기사님의 일갈처럼 영화만 보면 되는데…. 왜 달을 보지 않고 언제나 가리키는 손가락들만 볼까…. 이명세 영화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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