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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김효순 칼럼] 부수적 피해

등록 2010-11-28 21:41

김효순 대기자
김효순 대기자
미군의 군사용어 가운데 ‘컬래터럴 대미지’란 말이 있다. 의도하지 않은 부수적 피해를 가리키는 의미로 사용된다. 추상적 개념으로 보이지만 실제로는 오폭이나 전화에 휘말린 민간인 희생자들의 절박한 실상을 감추는 데 종종 쓰인다. 때로는 군사적 작전의 성과보다 부수적 피해가 훨씬 심한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지기도 한다.

2주 전 국회 의원회관에서 사할린동포 지원 특별법 제정에 관한 공청회가 열렸다. 행사를 주도한 박선영 자유선진당 의원의 열의에 탄복해 마지못해 토론자로 참석했다. 공청회가 끝나자 회의장을 꽉 메웠던 귀환동포 몇 분이 찾아와 인사를 나눴다. 한 분은 두 통의 탄원서를 건네주었다. 수신자가 주한 일본 대사와 외교통상부 장관으로 돼 있었다. 공청회에서 인사말을 하기로 했던 무토 마사토시 일본 대사의 일정이 취소된 것을 모르고 들고 나왔다가 예정에 없던 사람에게 전한 셈이다. 일제가 패망한 후에도 사할린에 오랜 기간 방치된 상황, 귀국 후 생활의 어려움, 사할린 잔류 동포 문제에 관한 변변한 연구 서적 하나 없는 우리 사회의 무관심에 대한 서러움 등이 적혀 있었다.

이 공청회는 국내 언론에 거의 보도되지 않았다. 유사한 법안 몇 개가 외교통상위에 상정은 돼 있지만 심의에 들어가지도 않은 상태다. 종래의 경험으로 얘기하면 특별한 전기가 없는 한 그냥 폐기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그래서 이 특별법을 주제로 칼럼을 쓰려고 했지만 북한군의 연평도 무차별 포격에 따른 정세 급변으로 바꾸지 않을 수 없었다. 60여년 난민 생활을 면치 못했던 사할린 동포 문제도 북한의 편집광적 행태의 부수적 피해가 되는 셈이다.

이런 사례를 들려면 끝이 없을 것 같다. 4대강·비정규직·대포폰 등 우리 사회의 주요 현안이 모두 뒷전으로 밀려났다. 수십년 동안 혈육을 만나지 못하고 하염없이 기다려온 이산가족 고령자들의 실낱같은 갈망은 또 어떻게 되나? 분단체제 고통의 해소와 역사적 청산이라는 구조적 문제의 해결에 손을 놓고 있던 수구 극우세력들은 기세등등해서 매카시즘적 행태를 보이고 있다.

일본의 사정도 별로 달라 보이지 않는다. 당장 민주당 정권이 고등학교 교육 무상화 지원 대상에서 조선학교를 우여곡절 끝에 포함시키기로 했다가 다시 연기했다. 보수세력의 공격에 대비해 지레 겁을 먹고 발을 뺀 것이다. 이 학교에 다니는 학생들이 등하굣길에 무슨 변을 당할지 걱정된다.

여성 참의원 의원인 오카자키 도미코 국가공안위원장도 연평도 포격의 피해자다. 북한의 도발을 보고받고 바로 경찰청에 등청하지 않고 다른 행사에 참석하거나 의원 숙사에 있던 것이 드러나 곤욕을 치렀다. 오카자키는 공안위원장 외에 소비자 및 식품안전, 저출산 대책 등 특명장관을 겸하고 있다. 시민운동 세력과 연대활동을 벌여온 그의 평소 관심사로 보아 공안위원장으로서의 직무는 좀 낯설 수 있다. 하지만 보수세력이 그를 물고 늘어지는 데는 다른 연유도 있다. 그는 민주당이 집권하기 전인 야당 시절 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의 보상을 위한 ‘전시 성적강제피해자 문제 해결촉진법안’의 작성을 주도했다. 2003년 2월에는 서울에 와 일본 대사관 앞에서 열린 수요집회에 참석하기도 했다. 극우적 논조를 펴는 <산케이신문>은 국회의원으로서 ‘반일 데모’에 가담했다고 몰아붙이고 일본의 과거보다 자신의 과거를 되돌아봐야 한다고 이죽거렸다. 이런 분위기라면 북한과 일본의 수교나 과거 청산의 필요성에 대해 입을 열 정치인이 나올 리가 없다.

북한 지도부가 연평도 포격의 파장이 일파만파로 번져가는 것을 따져보았을까? 요즘 북한의 행태는 국체 유지를 위해 무슨 짓을 마다하지 않던 전쟁 말기의 일본 군부를 연상시킨다. 하지만 북한을 몇 배로 응징하는 것으로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화약고 같은 정전체제의 불안정이 미 핵항모 전단의 막강한 무력시위로 달라지지 않는다. 다시 근원을 생각할 때다.

김효순 대기자 hyos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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