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택영 북한대학원대 교수·전 국제정치학회 회장
북한이 연평도에 무차별 포격을 가했다. 백주대낮에 사전 경고까지 하면서, 정전 이후 처음으로 우리 영토(물론 헌법상 북한 지역도 한국 영토임)의 군과 민에 의도적인 공격을 감행했다. 1968년 124군부대의 청와대 기습과 삼척·울진 침투보다 더 심각한 무력행사이다.
북한은 양자회담 및 6자회담 재개를 압박하고자 미국 쪽에는 우라늄 농축시설을 공개하는 ‘위협’을 구사했지만, 한국에는 ‘가해’를 했다. 그 추가적 의도가 북방한계선(NLL)의 무력화이든 김정은 승계체제 강화이든, 이번 도발은 군사모험주의가 막다른 한계에 이르렀음을 보여준다. 북한은 일단 금기를 깼기 때문에 앞으로 이런 일을 또 할 수 있고, 더 강도 높은 도발도 할 수 있다. 우리의 대비와 대응이 부실했기에 더욱 우려되는 바 크다.
물론 우리 해병들은 용감하게 싸웠다. 반면 합참의 대비책은 허술했다. 북의 상륙작전에 대비했다면서 그 제1단계인 집중포격을 예상하지 않았는지, 6문의 K9 자주포마저 제대로 쏘지 못한 실정이었다. 초동대응은 교전규칙의 비례성 및 충분성 원칙에도 미흡했다. ‘포에는 포로’ 대응할 뿐 우리 영토의 군·민을 공격하는 화력을 군함이나 전폭기로 제압하지 못했다. 우리는 육해공 ‘합동전력’ 극대화를 추구해왔다. 그런데 현실은 교전규칙과 ‘자군중심주의’가 북의 도발에 대한 합동작전을 가로막고 있다.
‘단호하게 대응하되 확전을 막아라’는 지침은 혼선이 엿보인다. 청와대와 군은 서로 책임회피에 급급했지, 1400명 연평도 주민의 보호는 안중에 없었다. 정부와 군이 모두 나 몰라라 하는 가운데 주민들 스스로 연락선과 어선을 타고 탈출한 ‘피난민’ 신세가 되었다. 실망스럽다 못해 분노가 치민다.
군 당국이 지난해 ‘선제공격’까지 거론했지만, 근래 우리 정부와 군 모두 강력히 응징한다는 말만 요란했지 행동은 약했다. 우리는 확전을 막아야 한다. 그러나 단호할 때에는 단호해야 한다. 과거 한국군은 교전규칙에 얽매이지 않고 단호하게 도발을 응징한 바도 있다. 힘은 때로 결단에서 나온다. 근래 남북간 의지의 대결에서 북이 기선을 잡았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군사력의 가장 중요한 요소는 정신력이다. 김관진 신임 국방장관 내정자도 군인정신을 강조했다. 군이 보고 위주의 행정조직처럼 변모했다는 것이다. 옳은 말이다. 군은 명예와 사기를 자양분으로 성장하는 집단이지만, 정치권과 언론이 때로는 군을 죄인처럼 대했다. 한마디 덧붙이자면, 그동안 우리 국민과 군 모두 너무나 대미의존에 안주했다는 사실이다. 우리 목숨과 나라의 존망을 우리가 책임진다는 자주적 의지가 절실히 요청된다. 자주국방은 반미나 친중과 상관없다. 우리 군이 지혜와 용기를 겸비한 수장을 맞아 강군으로 거듭나기를 기대해 마지않는다.
군은 강력한 대응책으로써 북의 도발을 억제하되 전쟁이 나면 승리를 쟁취해야 한다. 그러나 대북정책에는 화전 양면이 있다. 대응이라는 사후요법은 하책이고, 상책은 예방이다. 정부는 남북관계를 능동적으로 관리하여 북을 견인함으로써 평화와 안보를 지켜야 한다. 이명박 정부의 비핵화·대북지원 연계 정책은 아직까지 북한의 긍정적인 변화를 유도하거나 평화를 증진하는 데 실패했다. 오히려 북은 중국 쪽으로 경도되어 가고 있다.
대북정책은 강해야 할 때 강하고 부드러워야 할 때 부드러워야 한다. 역대 정부의 대북정책은 모두 안보와 기능주의 협력을 동시에 추진했다. 악화일로에 있는 남북관계를 바로잡고 전향적으로 관리하기 위해서는 결국 진솔한 소통 외에는 대안이 없다. 그러지 않으면 한반도는 또다시 적대와 소모적인 군비경쟁의 냉전체제로 복귀하게 될 것이다.
함택영 북한대학원대 교수·전 국제정치학회 회장
함택영 북한대학원대 교수·전 국제정치학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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