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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아침햇발] 북한 붕괴론 / 박병수

등록 2010-12-02 20:14수정 2010-12-02 20:27

역사는 반복되는 모양이다. 1994년 김일성 주석 사후 등장했던 북한붕괴론이 최근 위키리크스를 통해 공식 부활했으니 말이다.

레퍼토리도 그때와 그렇게 다르지 않다. 북한이 경제적으로 붕괴하고 있으며 내부 동요가 가속되고 있다는 것이다. 북한 최고권력자의 신상 변화가 촉매제 구실을 할 것이라는 전망도 그때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물론 당시의 계기가 김 주석의 갑작스런 사망이라면 이번에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건강 이상이다. 현인택 통일부 장관은 김 위원장이 2015년을 못 넘길 것이라고 믿었고, 천영우 당시 외교부 2차관은 김 위원장 사후 2~3년 안에 북한이 붕괴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다른 점이 있다면, 중국 변수의 무게 정도다. 이번에는 중국을 달래기 위해 광물자원이 풍부한 북한에서 중국 기업들의 사업 기회를 보장하는 방안까지 나왔다고 한다. 한반도에서 중국의 위상이 달라졌음을 실감하게 한다.

그나저나 이번에는 믿을 만한 걸까? 당국자가 정보원을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았으니, 단정하기는 쉽지 않다. 위키리크스에 언급된 내용을 보면, 많은 정보가 이전보다 북한 주민 접촉이 쉬워진 상황에 빚지고 있는 듯하다.

그러나 정보 실패는 드물지 않다. 이라크에서 미군의 침공 명분이었던 대량파괴무기가 발견되지 않았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조지 부시 전 대통령은 최근 회고록에서 대량파괴무기가 발견되지 않아 “당혹하고 고통을 느꼈다”고 말했다. 잘못된 정보의 결과는 끔찍했다. 미군은 7년간 발목이 잡혔고, 민간인 6만여명을 포함해 10만명 이상이 희생됐다.(위키리크스가 공개한 미군자료) 폐쇄적인 북한에 관한 정보는 더 말해 무엇하랴. 실제 당국은 최근 영변의 우라늄 농축시설을 북한 스스로 공개할 때까지 까맣게 모르고 있지 않았는가? 미국 중앙정보국 한국지부장을 지낸 도널드 그레그 전 주한대사는 “미국 첩보 역사에서 북한은 가장 오래 지속하는 실패 사례”라고 말했다고 한다.

객관적인 자료는 북한붕괴론과 거리가 있어 보인다. 북한이 경제적으로 어려운 것은 맞다. 한국은행의 추계 자료를 보면, 북한은 2008년 3.1% 성장한 것을 빼곤 2006년부터 지난해까지 3년 동안 -0.9~-1.0% 성장했다. 그러나 1990~97년 해마다 -4~-6%로 뒤걸음치던 것과 비교하면 훨씬 양호하다. 남북 경협의 공백을 북-중 경협이 그런대로 메우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최대 몇백만명이 아사했다는 ‘고난의 행군’도 넘긴 북한이 그렇게 쉽게 무너질 상황인가라고 묻는 것이 합리적이지 않을까?

북-중 관계에 대한 인식도 의심스럽다. 천 차관은 “중국이 북한을 포기할 준비가 돼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중국이 북한을 완충지대로 삼아온 전략적 판단을 바꿀 만한 계기나 상황변화가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았다. 북-중 관계가 최근 김 위원장의 잇따른 방중 등 양국의 교류에 비춰볼 때 어느 때보다 우호적인 분위기라는 평가에 대해서도 설명이 필요하다.

북한붕괴론이 틀렸다고 단정하는 것은 섣부를지 모른다. 사실 북한의 선군체제는 스스로 비상체제임을 고백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리고 실제 북한에는 김 위원장의 건강 문제나 순탄한 권력이양 여부 등 변수가 남아 있다. 붕괴론이 하나의 가설로 제시될 만한 배경이고, 정보당국의 예민한 촉각이 필요한 대목이다. 그러나 희망 섞인 가설을 확고한 현실로 받아들이면 문제는 달라진다. 이명박 대통령은 2008년 “기다리는 것도 전략”이라고 말한 바 있다. 그러나 기다린 결과가 무엇인가?


북한의 급변사태에 대한 대비는 필요하다. 돌발사태는 예고 없이 찾아온다. 없다면 직무태만이다. 그러나 붕괴론에 기초해서 대북정책을 수립하는 것은 전혀 다른 이야기다. 북한의 붕괴를 기다리며 무시 정책을 쓰거나, 아니면 적극 추진하다가 북한이 예상대로 무너지지 않으면 어떻게 할 것인가? 그 후폭풍을 우리는 이미 경험하고 있지 않은가? 얼마나 더 많은 국민의 고통이 필요한가? 박병수 모바일 에디터 su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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