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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기고] 리 선생이 가르친 길 / 와다 하루키

등록 2010-12-06 20:31수정 2010-12-07 08:11

내가 리영희 선생에 대해 처음 잘 알게 된 것은 1979년 말 선생이 <8억인과의 대화> 출판 건으로 체포됐을 때였다. 나는 당시 <일-한 연대운동 뉴스>에 ‘진실이 궤변으로 보일 때-이영희와 전환시대의 논리’라는 제목으로 글을 썼다.

그 뒤 1980년 <월간 대화>의 논문집을 편집할 때는 선생의 논문 ‘광복 32주년의 반성’(1977년 8월호 게재)을 선별해서 내가 번역했다. 그 논문은 엄정한 자기반성의 주장으로 강렬한 인상을 주었다.

“식민지주의와 제도가 우리들을 부정했다. 그 부정을 지금부터 다시한번 우리들의 의지로 내부적으로 부정하는 데부터 시작하지 않으면 안 된다.”

나는 선생을 정말로 존경했다. 그러므로 1984년 말 선생이 출국할 수 있다는 이야기가 전해졌을 때 굉장히 기뻤다.

내가 일하는 도쿄대 사회과학연구소의 외국인 연구원으로서 받아들이도록 추진했다. 내가 선생의 숙소가 정해진 도미사카의 기독교센터에서 기다리고 있자 선생은 부인과 함께 도착하셨다. 나는 전설적인 불굴의 투쟁하는 지식인과 대면했다. 이 선생님은 딱딱한 얼굴을 하고 계실 것으로 생각했으나 얼굴에 웃음이 터져나오자 친절하고 개방적인 인품이 전해졌다. 숙소 근처의 술집에 가서 선생과 술을 마셨다. 선생은 일본의 식민지 지배, 일본 정치인의 망언은 매섭게 비판하셨으나 일본인에게는 반감을 갖고 계시지 않았다. 초등학교 시절 일본인 교사에 대해 그리움을 담아 말씀하셨다.

<한겨레> 신문이 북한에 특파기자단을 보내는 일을 선생이 고안하셔서 나에게 협력을 요청해 야스에 료스케(전 <세계> 편집장·이와나미서점 사장)씨에게 부탁했다. 그것은 오랜 기간에 걸친 이야기였다.

선생은 또 나에게 베트남을 방문해보고 싶다며 베트남대사관과의 가교를 요청하셨다. 일등서기관이 그 이야기를 듣고 본국에 연락해주게 됐다.

1989년 봄 베트남으로부터 받아들이겠다는 연락이 온 직후, 선생은 기자단의 방북계획 건으로 민주화된 한국에서 체포됐다. 선생이 결박된 모습을 신문에서 봤을 때의 충격과 슬픔은 잊을 수 없다.

1990년 나는 처음으로 한국에 갈 수 있게 됐다. 방문 첫날 선생이 나를 만나러 롯데호텔에 와주셨다.

그때부터 20년간 한국에 가면 선생을 뵈었다. 선생은 자동차 운전을 배워서 나를 태우고 한강을 보여주셨다. 그때 “이제 선생이라 부르는 것은 관두세요”라고 말씀하셨다. 이제부터는 친구로서 사귀자는 생각이었다.

위안부 문제(일본의 민간단체인 아시아여성기금을 설립해 군대위안부 피해자들에게 위로금을 전달해주자는 방안으로 와다 교수 등이 중심적으로 활동)로 한국의 지인들과 긴장관계가 됐을 때 선생은 위안부 문제에 관여하는 것을 그만두는 게 어떠냐고 조언하셨다.

선생이 저작집을 내시고 이제 집필활동은 하지 않겠다고 선언하셨다는 이야기를 듣고 나는 “아직 선생의 의견이 중요합니다. 계속 발언해주세요”라고 말씀드렸다. 선생의 부음을 듣기 전날 나는 다시 선생의 북방한계선(NLL)에 관한 저명한 논문을 다시 읽고 병상에 있는 선생을 생각했다.

오늘 선생의 1974년 말씀이 상기된다. “인간 해방과 사상의 자유의 역사는, 어디에서든 독선에 대한 회의가, 권위에 대한 이성이 승리를 거두는 오랜 투쟁의 반복이다.”

선생은 “임금님은 벌거숭이다”라는 소년의 용기를 칭찬하기보다 그 소년이 갖고 있던 사람들의 ‘인간적 타락, 사회적 타락, 지적 후퇴’를 고발해 마지않았다.

나는 숙연하게 선생의 부음을 들었다. 우리들은 선생이 가르친 길을 걸어가지 않으면 안 된다. 남은 시간이 길지 않다고 해도.

와다 하루키 도쿄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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