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주희 기자
박주희 지역부문 기자
지난 수요일 저녁, 대구 수성구에 있는 ‘물레책방’에 사람들이 모였다. “평소에도 좀 챙기시지, 웬일로 이런 자리를 다 마련하셨어요?” 팔공산 언저리에 살고, 인문학에 관심이 많다는 조순자씨가 따끔하게 한마디 했다. 최근 민주노동당 후원금을 냈다는 이유로 징계를 받은 한 교사는 “창간 때 저를 흠모하던 친구한테 주식 10주를 선물 받았는데, 인연은 안 됐지만 참 멋진 선물이었다”고 추억을 꺼내놨다. “여기 오는 길에 택시기사와 얘기를 하는데 말이 어찌나 척척 통하던지, 얼른 구독신청하라고 권했지요.” 경주에서 온 소설가 이미진씨 얘기다.
이날 둘러앉은 사람들은 20대부터 70대까지 연배도 제각각이고, 사는 곳은 구미, 포항, 대구, 경주에 흩어져 있다. 대학생, 교사, 시민단체 활동가, 출판사 대표, 주부라고 소개하는 이 사람들의 공통점을 여간해서는 찾기 어렵다. ‘대구·경북에 살면서 <한겨레>를 읽는 사람들.’ 이들을 한데 묶는 열쇳말이다. 같은 신문을 읽는다는 게 뭐 그리 대단한 공통점이냐고? ‘이 지역’에서 ‘이 신문’을 보는 사람들은 그렇다.
신문사가 멍석을 깔았다. ‘한겨레 독자들과 기자의 만남’이라고 이름 붙였다. 서른명쯤 되는 독자들의 진지한 수다는 밤늦도록 이어졌다. 막걸리와 소주잔을 기울이며, 한국 근현대사를 몇 바퀴씩 훑었다. 지역갈등을 부추긴 정치세력, 1987년 대선, 촛불시위, 최근 총학생회 선거에다 ‘지랄탄’에 얽힌 에피소드까지.
기세환씨는 마치 책을 읽듯 낮은 목소리로 이슈마다 명쾌하게 주석을 달았다. 통일운동을 하다가 직장에서 쫓겨난 뒤 40년 넘게 책방을 한 4·19 세대의 내공이 대화 속에 빛났다. “먹고살기 바빠서 학교 다닐 때 열정은 다 잊고, 경제지만 파고들면서 살았다. 노무현 대통령 서거 때 정신이 번쩍 들어 다시 <한겨레>를 보고 있다”는 정아무개씨의 ‘고백’은 박수를 받았다.
삼삼오오 모여앉은 자리마다 이야깃거리는 돌고 돌았지만, 유심히 들어보니 결국 얘기는 하나로 모아졌다. “사람 그리울 때 우리 좀 만납시다.” “<한겨레> 보는 사람들끼리는 보기만 해도 반갑잖아요.” “직접 담근 동동주에 해수 손두부 맛보러 오라”는 조씨의 초대에 몇몇은 이튿날 당장이라도 달려갈 기세다.
소통이 참 가볍고 쉬워졌다. 컴퓨터를 켜면, 화면에는 메신저 프로그램이 자동으로 떠서 온라인 접촉망을 가동하라고 조른다. 로그인을 하는 순간 곳곳에 흩어져 있는 수많은 사람들과 한꺼번에 접촉할 수 있다. 불쑥 누군가의 블로그나 미니홈피를 찾아가 소소한 사생활까지 들여다볼 수도 있다. 휴대전화는 사람을 시도 때도 없이 불러낸다. 전화보다 간편한 문자메시지도 있다. 살가운 척 안부를 물을 필요도 없다. 손가락으로 톡톡 쳐서 용건만 주고받는다. 트위터로 원하는 사람들과 꼬리에 꼬리를 문 ‘140자 대화’를 온종일 이어간다. 걸으면서 스마트폰으로 실시간 채팅도 한다. 일상의 관심사, 정치 성향, 문화적 취향에 맞게 골라잡아 말을 쏟아낼 사이버 공간이 널렸다. 촘촘하게 엮인 온라인 소셜네트워크 덕분에 마음만 먹으면 온 세상 사람들과 닿을 수 있다. 금세 친구도 된다.
그런데도 “사람이 아쉽다”고 했다. 그날 모인 사람들은 하나같이 그랬다. 전파나 활자 너머에 있는 사람 말고, 얼굴 맞대고 침 튀기며 얘기 나눌 그런 사람이 아쉬운 거다. 그날 마침 대구에 첫눈이 왔다.
박주희 기자 hop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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