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자녀를 둔 부모들이 지난 8월 서울 보신각 앞에서 장애인 복지 예산 확보를 촉구하며 삭발을 하고 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다른체급간 경쟁은 애초 불공정
규칙만 지킨다고 공평하진 않아
신자유주의는 출발선부터 모순
역동적 복지로 취약층 지원해야
규칙만 지킨다고 공평하진 않아
신자유주의는 출발선부터 모순
역동적 복지로 취약층 지원해야
[싱크탱크 맞대면] 정의로운 사회의 우선조건은?
실질적인 평등은 반드시 교육·의료·주거·보육·노후·기초소득의 보장 등 보편적 사회안전망의 확립이 전제돼야 한다. 이것이 동반되지 않으면 출발선의 공평 또는 평등이 아니다.
반칙과 특권의 해소를 강조하는 경제적 자유주의자들의 ‘공평론’과 보편주의 복지국가 담론인 복지국가소사이어티의 ‘역동적 복지국가론’ 간의 대립구도를 요약하면 이렇다. ‘공평론’은 우리 사회의 전근대성에 주목한다. 불공평과 불공정이 난무하는 한국 사회가 과연 제대로 된 자본주의 사회인지 의심스럽다는 것이다. 따라서 공평론은 공정경쟁을 가로막는 각종 반칙과 특권을 철폐해 ‘사회적 상벌체계를 합리화하는 것’이 더 시급한 과제라고 주장한다.
반면 역동적 복지국가론은 주로 우리 사회에 만연한 ‘신자유주의 양극화’가 불공정의 주범이라고 본다. 따라서 역동적 복지국가론은 보편적 복지와 적극적 복지의 제도화를 통해 이 문제를 해결하려 한다. 사회보장이 확대될수록 신자유주의 양극화 해소를 위한 기반이 넓어지고, 불공정 문제의 해결을 위한 토대가 형성된다고 본다. 두 진영이 생각의 차이를 나타내게 된 기본적인 원인은 ‘정의란 무엇인가?’에 대한 판단을 달리하기 때문이다. 즉 ‘공정’을 이해하는 방식에서 역동적 복지국가의 공정과 경제적 자유주의의 공정이 다르기 때문이다.
공평론은 ‘자유주의적 공정’을 설정한다. 반칙과 특권이 없고 경쟁의 규칙만 잘 지켜진다면, 즉 상벌체계만 합리적이라면 일정하게 시장의 패자가 대량 생산돼도 문제 삼지 않겠다는 것이다. 경제적 자유주의의 시장적 공정이라고 볼 수 있다. 이에 반해 역동적 복지국가론의 공정은 적극적이고 실효적인 ‘광의’의 공정을 뜻한다. 실질적인 공정경쟁을 담보하려면 동일한 경쟁규칙의 적용만으로는 부족하다. 반드시 교육·의료·주거·보육·노후·기초소득의 보장과 같은 보편적 사회안전망의 확립이 전제돼야 한다. 이것이 동반되지 않는다면 실질적으로는 출발선의 공평 또는 평등이 아니다.
얼마 전, 롯데마트의 5000원짜리 닭 판매 사건은 과연 공정한 경쟁이었을까? 역동적 복지국가는 경쟁과정에서 반칙과 특권이 없는 공평만이 아니라, 그 이전의 경쟁 출발지점에서의 평등, 즉 실질적이고 적극적인 공정을 강조한다. ‘롯데 닭’과 ‘동네 닭’의 공정경쟁 사건은 상벌체계의 합리화 이전에 경쟁의 배경이 되는 체급의 편성(출발점)이 실질적으로 공정해야 함을 보여준다. 롯데 닭과 동네 닭의 싸움은 ‘체급이 다른 선수’를 같은 링에 올려놓고 싸우게 하는 원천적 불공정 경쟁이었다.
권영길 의원실의 자료에 따르면, 구로·금천·관악구의 아이들은 주로 교사, 공무원, 회사원이 장래 희망인 반면, 강남·서초·송파구의 아이들은 주로 의료인, 법조인, 기업인을 꿈꾼다. 이를 보도한 <시사인>은 부모의 경제력에 따른 ‘꿈의 양극화’라는 설명을 붙였다. 삶의 양극화는 결국 꿈의 양극화에서 시작된다는 점에서 의미심장하다. 평생 삶의 안정만을 추구한다는 것은 달리 말해 삶에 매여 산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역동성의 형성을 방해한다. 단순한 상벌체계의 합리화만으로는 이 문제 해법을 마련할 수 없다. 상벌체계의 합리화는 좁은 의미의 공정, 절차적인 공정일 뿐이다. 역동적 복지국가론이 복지만능주의적인 해법을 추구하는 것은 아니다. ‘역동적 복지국가’라는 국가모델은 상반되는 듯한 두개의 가치를 단어 하나에 몰아넣은 개념이다. ‘역동성’이란 시장의 생명력을 좌우하는 핵심개념이다. 반면 ‘복지국가’란 탈상품화의 맥락에서 추구되는 개념이다. 즉 ‘역동적 복지국가’란 하나의 단어 안에 ‘시장 이전의 가치’와 ‘시장 이후의 가치’를 모두 담는 이상적인 개념이다.
역동적 복지국가론은 보편적 복지와 적극적 복지를 내세우면서 공정한 경제와 혁신적 경제를 동시에 요청한다. ‘시장’에 대한 적극적인 인식 없이는 ‘복지국가’ 자체가 성공할 수 없다는 인식의 결과이다. 이를 두고 복지만능주의라고 비판하는 것은 심각한 오인사격이다.
반칙과 특권을 강조하는 공평론의 결론이 ‘합리적인 상벌체계’의 마련이라는 협의의 소극적 공정으로 귀결된 것은 무척 아쉽다. 신자유주의 양극화의 고통을 우리 사회의 주요 모순으로 파악하지 못하고, 우리나라가 여전히 전근대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공평론의 진단은 궁극적으로 ‘자본주의와 자유 시장, 즉 신자유주의를 더욱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으로 이어진다.
우리는 일단 시장 이전의 가치에 주목해야 한다. 인간으로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보장받아야 하는 시장 이전의 가치는 그 자체로 ‘공정한 사회’의 중요한 기반이다. 실질적으로 공평한 출발선을 만들어주는 거대한 원동력이다.
홍기표 복지국가소사이어티 정책위원 겸 운영위원
권영길 의원실의 자료에 따르면, 구로·금천·관악구의 아이들은 주로 교사, 공무원, 회사원이 장래 희망인 반면, 강남·서초·송파구의 아이들은 주로 의료인, 법조인, 기업인을 꿈꾼다. 이를 보도한 <시사인>은 부모의 경제력에 따른 ‘꿈의 양극화’라는 설명을 붙였다. 삶의 양극화는 결국 꿈의 양극화에서 시작된다는 점에서 의미심장하다. 평생 삶의 안정만을 추구한다는 것은 달리 말해 삶에 매여 산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역동성의 형성을 방해한다. 단순한 상벌체계의 합리화만으로는 이 문제 해법을 마련할 수 없다. 상벌체계의 합리화는 좁은 의미의 공정, 절차적인 공정일 뿐이다. 역동적 복지국가론이 복지만능주의적인 해법을 추구하는 것은 아니다. ‘역동적 복지국가’라는 국가모델은 상반되는 듯한 두개의 가치를 단어 하나에 몰아넣은 개념이다. ‘역동성’이란 시장의 생명력을 좌우하는 핵심개념이다. 반면 ‘복지국가’란 탈상품화의 맥락에서 추구되는 개념이다. 즉 ‘역동적 복지국가’란 하나의 단어 안에 ‘시장 이전의 가치’와 ‘시장 이후의 가치’를 모두 담는 이상적인 개념이다.
홍기표 복지국가소사이어티 정책위원 겸 운영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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