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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아침햇발] ‘기후전쟁’과 북한 / 조홍섭

등록 2010-12-23 20:57

조홍섭  환경전문기자
조홍섭 환경전문기자
“지구 온난화가 심각하다면서 왜 이리 추워?”

직장 동료가 이렇게 물었다. 같은 질문을 지난해 이맘때도 들었다. 당시 연말에 한파가 맹위를 떨치더니 1월4일엔 서울에 25㎝의 기록적인 폭설이 내렸다. 유럽이 2년째 한파와 폭설에 휩싸인 걸 보니 올겨울이 어찌될지 벌써부터 걱정이다.

하지만 평균적으로 지구는 계속 더워지고 있다. 유럽의 최근 한파도, 온난화로 북극해의 얼음이 많이 녹은 여파라는 분석이 나온다. 미 국립항공우주국(나사)은 올 11월까지 지구 온도가 사상 최고를 기록했다고 밝혔다.

실제로 파키스탄 모헨조다로의 최고기온은 53.5도를 기록했고, 이 나라 북서부를 덮친 홍수는 1600명의 사망자와 2000만명의 이재민 피해를 냈다. 러시아에는 평년보다 15도나 높은 열파가 한달 동안 계속돼 수천명이 목숨을 잃고 대규모 산불이 일어났다.

많은 선진국 사람들에게 기후변화는 그저 당장의 불편과 미래의 불안일지 몰라도 상당수 개발도상국에게는 생존이 걸린 현실의 위협이다. 식량, 에너지, 기후는 서로 맞물려 가난한 이들의 삶을 핍박한다.

기후변화는 폭력과 전쟁을 부른다.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은 취임 직후인 2007년 수단 다르푸르 내전을 “세계 최초의 기후변화 분쟁”이라고 불렀다. 기후변화가 초래한 홍수, 가뭄, 토양 침식, 기근, 식수 부족 등이 가난과 갈등을 악화시켜 내전, 테러, 불법이민, 국경분쟁으로 이어진다. 독일의 사회심리학자 하랄트 벨처는 “미래의 전쟁은 기후전쟁”이라고 단언했다.

이런 사태는 가난하고 사회경제적으로 취약한 이른바 ‘실패국가’에서 먼저 시작되겠지만, 기후난민의 증가와 이를 막기 위한 폭력적 대응과 테러를 통해 선진국으로 확산될 것이다.

미국의 외교 전문지 <포린 폴리시>가 집계하는 2010년 ‘실패국가지수’에는 소말리아, 차드, 수단 등 아프리카 나라들이 선두에 있고 북한도 19위에 올라 있다. 북한은 2005년 이 지수를 처음 집계한 이래 늘 아프리카의 최빈국 다음인 10~20위권을 유지하고 있다.


우리 사회엔 북한을 권력세습, 마지막 남은 완고한 사회주의, 인권탄압 등 특별한 나라로 보는 시각이 강하지만, 놓치고 있는 중요한 측면은 북한이 기후변화로 인한 심각한 피해를 입고 있으며 또 그것이 앞으로 국가의 존립을 위협할 대표적인 개도국이란 사실이다.

1991년 사회주의권이 붕괴하기 전까지 북한은 아시아에서 농업의 기계화가 가장 앞선 나라의 하나였다. 국토의 14%에 불과한 경지에서 식량을 자급하기 위해 다량의 비료와 농약, 트랙터를 투입했다. 1980년대부터 토질 악화의 조짐이 드러났지만 결정타는 석유를 국제시세의 절반가격에 공급하던 소련의 붕괴였다.

다락밭을 개간하며 안간힘을 쓰던 중 1995년 100년 만의 대홍수를 맞아 국토의 75%가 물에 잠겨 529만명의 수재민이 발생하는 큰 피해를 입는다. 이듬해까지 이어진 홍수로 견고하던 경제기반이 송두리째 무너지면서 ‘고난의 행군’으로 접어든다. 식량 증산을 위한 무리한 산지 개발과 땔감 채취로 토양 황폐화, 10년에 7번꼴로 발생하는 홍수, 식량생산 감소의 악순환이 되풀이됐다.

석유에 의존한 농업이 무너지면서 기근과 생태계 파괴가 연쇄적으로 일어나는 현상은 개도국에서 흔히 벌어진다. 존 페퍼 미국 정책학연구소 북한 전문가는 이를 두고 “우리는 모두 북한 사람”이라고 적었다.

지난 세기 동안 남한의 평균온도는 세계 평균 0.75도의 2배인 1.5도, 북한은 1.9도 상승했다. 하지만 남한은 독일과 영국보다도 전기를 많이 쓰는 나라인 반면 북한은 “1와트의 에너지는 한방울의 피와 같다”는 구호가 나붙은 나라다.

북한이 재해 예측과 방지를 위한 사회기반시설을 갖추고 재생에너지 개발, 조림사업을 벌이도록 돕는 건 북한뿐 아니라 남한에도 이롭다. 어차피 한반도의 남쪽과 북쪽은 기후변화에서 공동운명체일 수밖에 없다.

조홍섭 환경전문기자ecothin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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