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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문화칼럼] 황혼기를 맞기 위한 단상 / 채호기

등록 2010-12-24 20:42

채호기 시인
채호기 시인
나이 들면 연륜이 쌓여 노련해지지만, 한편으로 매사에 조심스럽고 걱정이 많아진다. 앞뒤 없이 뛰어드는 용기와 새롭고 신기한 것에 매달리는 모험적인 호기심은 희박해지는 것이다. 반면 두려움이 많아지고 점점 소심해져서 근심이 잦아진다. 세월의 순리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여유를 갖고 느긋해지면 좋겠지만, 그게 말처럼 쉽지 않다. 문제는 과학과 의학의 발달로 점점 몸과 마음의 균형이 맞지 않게 된다는 데 있다. 몸은 의술의 뒷받침으로 노쇠의 속도가 느리게 되는 반면, 마음은 복잡한 사회환경으로 오히려 예전보다 더 빨리 쇠락하게 되는 것이다.

게다가 몸은 젊은데 마음이 늙어버린 경우처럼 단순한 양상이라면 그나마 괜찮겠지만, 몸도 젊고 의욕도 젊어서 젊은이 이상으로 젊은이 행세를 하는 다소 복잡한 양상을 띠는 게 문제다. 다시 말하면 젊은이는 젊은이로서의 사회적 위치가 젊음의 특권인 무모한 용기와 모험을 억누르고 조정한다면, 이 젊지 않은 이상한 젊은이는 사회적 위치와 권위를 이용해 제멋대로 독선과 아집을 부리고 노여움을 과시한다는 것이다.

이런 현상은 나이에 맞지 않게 젊게 굴다가 신체를 다치게 되는 작고 단순한 것에서부터 좀더 심각하고 복잡한 정신적 문제에까지 요즘 우리 사회에서는 쉽게 눈에 띄는 흔한 일이 되었다. 예전 같았으면 황혼기를 맞는 방법으로 나이를 잊어버리고 일에 매달리는 단순한 처방이 먹혀들어갔겠지만, 몸과 마음이 점점 불균형해져 가는 요즘이나 앞으로의 세태에서는 좀더 정교하고 세심한 해법이 필요한 것 같다.

최근 우리 사회에서는 노령화 문제에 대해 다방면의 전문가들이 많은 해법을 내놓고 궁리하고 있다. 나는 거기에 정신을 관리하고 가다듬게 하는, 그야말로 몸뿐만 아니라 마음까지도 젊게 하는 철학적인 탐색이 플러스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와 관련해서 나는 ‘현재, 이 순간’을 중시하는 오늘의 한국 불교 사상이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 사상 속에서 많은 지혜를 길어올릴 수 있겠지만, 특히 자신과 자신이 놓여 있는 현재라는 시간을 긍정하는 큰 긍정의 정신을 우리의 생활철학으로 가져올 수 있다면 우리 사회 노인들의 정신적 문제에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요즘 ‘웰빙’이라는 단어가 주목받지만, 어떤 이유에선지 잘 먹고 건강을 잘 관리하는 것쯤으로 편향되게 받아들여지고 있다. 진정한 웰빙은 자신을 성찰하고 잘 다스리는 데에서 출발한다. 자신을 잘 관리하는 것은 흔히 자신에게 국한된 몫인 것 같지만, 사실은 타인을 배려하는 데에서 시작하는 것이다. 우리가 사랑에 빠졌을 때 자신은 없고 사랑하는 사람만 오롯하듯이 타인에 대한 환대 없는 자기배려는 불가능하다. 내가 닮고 싶은 한 어른은 자신이 어른이란 걸 전혀 내세우지 않는다. 모든 사람을 동년배 친구처럼 대한다. 그 비결을 물었더니 사람을 대할 때도 일을 할 때도 ‘무위’(無爲)로써 한다는 대답을 들려줬다. 그러고 보니 이 ‘무위’라는 것도 결국 불교 사상의 밑바탕과 통하는 말이다. ‘무위’라는 말이 좋긴 하지만 그걸 실행하는 건 득도해야만 가능한 어려운 일인 것 같다고 했더니, 그분이 동문서답처럼 나이가 들수록 머리를 쓰는 것보다 몸을 많이 움직이는 게 좋다는 말을 했다.

그 말은 내게 생각만 하지 말고 조그마한 것부터 하나씩 실행해보라는 말로 들렸다. 그래서인지 그분은 어른으로서 남에게 무얼 시키기보다 사소한 것이라도 항상 스스로 몸을 움직이며 솔선수범했던 것 같다. 나이 들어 연륜이 깊어진다는 것은 결국 처세나 직업에 대한 연륜이 아니라 이런 지혜를 일컫는 것이리라.

채호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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