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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시론] 자사고를 넘어 ‘다양한 교육’으로

등록 2010-12-26 21:02

이범 서울시교육청 정책보좌관, 교육평론가
이범 서울시교육청 정책보좌관, 교육평론가
시론
서태지가 ‘교실 이데아’에서 “전국 900만의 아이들의 머릿속에 똑같은 것만 집어넣고 있다”고 일갈한 지 16년이 지났는데도, 우리나라의 고질적인 ‘붕어빵 교육’은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현 정부 들어 서울에는 자율형사립고가 27개나 인가되었으니, 확실히 학교 유형은 다양화된 게 맞다. 하지만 이 자율형사립고에서 들려오는 이야기는 ‘다양한 교육이 꽃피고 있다’보다는 ‘붕어빵을 더 쎄게 찍고 있다’는 것에 가깝다. 교육과학기술부 관계자들에게 이 문제를 지적하면 늘 ‘입학사정관제가 해결해줄 겁니다’라는 답변만 돌아온다.

우리나라 교육은 우선 수업·평가방식에서 고도로 획일적이다. 학교 수업은 ‘체험·탐구·의사소통’으로 대표되는 참여와 상호작용 위주의 수업이 아니라, 교사의 머릿속이나 교과서에 나와 있는 지식을 일방향적으로 학생의 머릿속에 넣어주는 주입식 수업이다. 학교에서의 평가는 주입된 내용이 온전히 머릿속에 존재하는지를 확인하는 평가이다. ‘서술형’ 평가를 도입해도 달라지지 않는다. 대부분 극히 규격화된 정답을 요구하는 ‘무늬만 서술형’이 출제되어, 오히려 객관식보다 부정적인 결과를 초래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수업·평가가 획일적인 원인은 세가지를 꼽을 수 있다. 첫번째 원인은 학년별 평가제도이다. 선진국은 대부분 교사별 평가/절대평가인데, 우리나라는 학년별 평가/상대평가이다. 교사들이 각자 가르친 학급만을 평가하는 것이 당연한 이치인데, 학년별로 똑같은 문제로 평가를 하게 만들어놓으니 수업과 평가가 하향평준화되는 방향으로 획일화된다. (최근 교과부가 절대평가로의 전환을 준비중이라고 하는데, 혹시라도 ‘학년별 절대평가’로 가게 되면 교사들은 여전히 붕어빵을 찍게 됨을 유의하기 바란다.) 두번째 원인은 가르치도록 의무화된 교육 내용과 학급당 학생수가 과다하다는 점이다. 지나치게 많은 분량을 지나치게 많은 학생들에게 전달하려다 보니, 결국 탐구나 토론 따위는 뒷전이 된다. 그리고 학원이 그나마 ‘주입식’ 교육을 할 때, 학교는 그보다도 못한 ‘주마간산식’ 교육을 하게 되어 ‘학원보다 못한 학교’라는 오명을 뒤집어쓰게 된다. 세번째 원인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중요한 시험인 대학수학능력시험과 일제고사가 객관식이거나 이에 가까운 규격화된 정답을 요구하는 시험이라는 점이다.

수업·평가방식의 획일성에 더하여 교육과정의 획일성이 존재한다. 이것의 원인도 세가지로 요약 가능하다. 첫번째 원인은 학생들이 실업계를 기피하여 지나치게 인문계로 몰리는 ‘인문계 획일성’이다. 이를 해결하려면 학생과 학부모가 실업계를 부담없이 선택할 수 있는 사회환경의 변화가 필요하다(그래서 교육의 진보는 사회의 진보와 함께 가야 하는 것이다). 두번째 원인은 ‘국영수’라는 획일성이다. 향후 전공이나 본인의 의향과는 무관하게 무작정 ‘국영수’ 위주로 평가하는 나라가 도대체 이 세상에 어디 있단 말인가? 세번째 원인은 학생들의 과목선택권이 없음으로 인한 획일성이다. 폭넓은 과목선택권을 보장하면 학생이 내신기록만으로도 ‘내가 역사에(또는 환경문제에) 관심이 많다’는 것을 입증할 수 있다. 하지만 내신 과목 선택권이 없는 우리나라 학생들은 자신의 개성과 적성을 모두 ‘비교과영역’을 통해 입증해야 한다. 이러니 입학사정관제는 피곤하고 부담스러운 제도일 수밖에 없다.

현 정부가 이런 문제들을 조금이라도 건드리거나 개선했다는 얘기를 들어보지 못했다. 그런 상태에서 ‘학교 다양화’ 정책을 펴서 자사고를 많이 만들어봤자, ‘무늬만 다양화’가 되는 것은 필연이다. 당장 내년 초로 미뤄진 수능제도 개편 발표가 걱정이다. 여기에 현 정부의(구체적으로는 <평준화를 넘어 다양화로>의 저자인 이주호 교육과학기술부 장관의) 교육정책의 성패가 걸려 있다. 제발 진로와 적성에 무관하게 무조건 ‘국영수’를 요구하는 이 후진적 제도부터 갈아엎어주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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