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태호 국제부문 기자
한반도는 지금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분쟁 지역 가운데 하나가 됐다. 남북한은 핵 불능화가 아니라 되돌이킬 수 없을 만큼 심각한 ‘대화 불능화’ 단계로 가고 있다. 남은 대통령이 앞장서서 전쟁을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외치고, 북은 핵전쟁 불사로 맞받아치고 있다. 이는 남북한이 스스로의 문제 해결 능력을 상실했다는 의미를 넘어 한-중 관계, 나아가 미-중의 전략적 협력관계마저 위태롭게 하고 있다.
지난 20일 연평도 실탄사격 연습을 앞두고 이명박 대통령은 “군사적으로 대치하고 있는 분단국가에서 영토방위를 위해 군사훈련을 하는 것은 주권국가로서 당연한 일”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여기에는 누구도 개의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중국 외교부가 18일 성명에서 훈련 계획에 강력한 반대의 뜻을 천명한 뒤였다. 그러자 20일 추이톈카이 외교부 부부장은 “누구도 한반도 남북한 주민들이 피를 흘리게 할 권리가 없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말을 정면으로 반박한 셈이다.
한-중 관계는 천안함 이래 갈수록 악화하고 있다. 미국이 보기에도 이런 상황은 불안하다. <워싱턴 포스트>는 21일 “한국의 이명박 대통령이 직면한 곤경은 한반도의 위험을 증가시키는 두 번째 요인”이라고 지적했다. 데니스 블레어 전 미국 국가정보국 국장의 말에도 이런 우려가 깔려 있다. 그는 12일 “한국이 북한에 대한 인내심을 잃고 있다”며 한국 정부가 북에 군사행동을 취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물론 필립 크라울리 국무부 공보담당차관보는 군사훈련은 한국의 당연한 권리라고 지지를 밝혔다. 단 ‘과거에도 실시한 적이 있고 북한을 위협하는 것이 아닌 통상적인’이라는 단서를 달았다.
천안함 사건 이래 미·중은 대북 압박과 추가 제재 그리고 한-미 연합군사훈련을 둘러싸고 갈등을 보여왔다. 그러나 이런 외교적 대결구도는 23일 미-중 정상회담 발표를 전후해 공동의 이익에 입각한 협력으로 바뀌고 있다. 백악관은 “후진타오 주석의 방문은 양국간 및 지역적·세계적 사안과 관련한 협력 확대의 중요성을 부각시킬 것”이라고 말했다. 한반도 상황 악화를 방치할 경우 걷잡을 수 없는 파국으로 치달을 수 있다는 공동의 위기의식 이외에 두 가지 점이 작용한 결과로 보인다.
하나는 지난 12월5일 오바마-후진타오 주석 간 전화통화 뒤 보여준 중국의 협력적 자세다. 미국의 고위 관리는 이날 “연평도 포격과 우라늄 농축 위협 등 최근 잇따르는 북한의 도발에 중국도 사실상 책임이 있다”고 압박했다. 중국은 이를 수용했다. 항공모함 조지워싱턴의 서해 훈련을 묵인했을 뿐만 아니라 역시 천안함 사건으로 거부했던 로버트 게이츠 미국 국방장관의 중국 방문을 받아들였다. 무엇보다도 다이빙궈 국무위원을 북한에 보냈다. 미국은 연평도 포격연습에 북한이 추가로 도발하지 않은 건 중국이 움직였기 때문으로 보고 있다.
다른 하나는 조엘 위트 존스홉킨스대 한미연구소 연구원이 지적했듯이 미국이 대북정책으로 견지해 온 전략적 인내는 한반도의 평화와 안보를 구축하는 일과 북핵 억제 및 제거, 핵기술 확산 차단 등 모든 전선에서 실패했다. 전략적 인내는 북한의 연평도 포격과 우라늄 농축용 원심분리기 앞에 무기력하다. 북한과의 직접 협상이 대안일 수밖에 없지만 남북관계가 가로막고 있다. 중국을 통한 접근은 이런 딜레마에서 빠져나올 수 있는 출구다. 북한은 국제원자력기구 사찰단의 복귀 등 긍정적 메시지를 내놓으며 적극적으로 이런 흐름을 활용하고 있다. 이 정부가 내심 미-중 전략협력으로 인해 소외될지 모른다는 초조감을 보이는 것과 대비된다. 강태호 국제부문 기자 kankan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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