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영 충남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불길한 예감은 틀린 적이 없다’거나 ‘설마가 사람 잡는다’는 말을 최근 3년 사이에 절감 또 절감한다. 와이티엔(YTN)이 그랬고, 한국방송(KBS)이 그랬고, 문화방송(MBC)이 그랬다. 이명박 정부는 종합편성채널 사업자로 조중동+매경을 낙점함으로써 집권 3년차의 대미를 장식했다. 현 정부는 좋게 말해 뚝심 하나 대단하고, 객관적으로 말해 후안무치하기 이를 데 없다.
‘조중동+매경’이란 조합은 그 자체로 문제투성이다. 첫째, 사업자 수가 4개이기 때문이다. 현재 종합편성을 하는 방송채널은 교육방송(EBS)을 제외한 지상파 4개다. 졸지에 4개가 추가돼 앞으로 8개로 늘어난다. 지상파조차 먹고살기 녹록지 않은 마당에 8개 채널이 다 같이 잘 먹고 잘살 순 없다. 누군가 망해야 한다. 아무도 곱게 망할 리 만무하다. 살아남기 위해 피 터지게 경쟁하며 발악할 것이다. 방송 생태계가 저질 상업화로 치달을 게 불 보듯 훤하다. 지역방송 등 취약매체부터 희생양이 되기 쉽다. 미디어 종 다양성이 훼손되는 것이다. 대체 어쩌자고 책임 있는 정책기관이 4개 채널이나 승인한 것인가.
둘째, 조중동매는 정치적으로 친여, 경제적으로 친자본, 한마디로 보수 일색이다. 어떤 방향으로든 여론의 균형추가 한쪽으로 쏠린 사회는 바람직하지 않다. 대의민주주의의 근간인 견제와 균형이 작동할 수 없다. 지배계층의 이익을 추종하는 목소리가 우세할 때 특히 그러하다. 이를 제어하기 위해 고안된 제도가 공영방송이다. 따라서 제 기능에 충실한 공영방송이라면 사회적 약자를 대변하고 진보적 성향을 띠기 마련이다. 오늘날 우리나라 여론 지형과는 거리가 한참 멀다. 현 정부의 노골적 개입으로 공영방송은 이미 관변화되었다. 보수 성향 방송채널 4개의 가세로 여론 독과점은 극에 달할 것이다. 이를 뻔히 알고도 조중동매를 간택한 방통위는 정책기관이 아니라 정권의 안위를 위해 복무하는 정치기구다. 애초 종편채널을 도입한 명분도 여론 다양성 확보 아니었던가.
종편 심사 결과가 어이없는 이유는 또 있다. 방송 생태계 파괴와 여론 독과점 심화에 대한 사회적 우려는 그간 줄기차게 제기됐다. 그럼에도 조중동+매경이란 결과는 그 우려를 해소하려는 일말의 숙고도 없었음을 말한다. 쟁점에 귀기울이는 시늉도 없이 자기들만의 세계에서 일방통행한 것이다. 되돌아보면, 종편은 단 한 번도 사회적 합의를 거치지 않았다. 그 모태인 미디어법은 재작년 여름 난투극 끝에 국회를 통과했다. 두 차례나 헌법재판소를 경유했다. 결정은 나왔지만 사회 구성원의 동의를 얻진 못했다. ‘위법이지만 법’이라니. 부작위 소송은 기각했으나 재판관 누구도 미디어법이 유효하다고 하지 않았다. 방통위의 종편 사업자 선정 의결조차 야당 위원들이 퇴장한 가운데 이뤄졌다.
이런 기세라면 이제 종편을 시장에 연착륙시키기 위한 갖가지 조처가 무리수를 마다하지 않고 동원될 것이다. 방송법 규정이 어떠하든, 종국에는 4개 종편채널 모두 황금채널을 배정받고 케이블과 위성을 통해 의무 재전송될 것이다. 느슨한 편성·광고·심의 규제는 더 헐거워지리라. 종편 특혜를 무마하는 대가로 지상파 등 타 사업자에게 떡고물 돌리는 일도 빼먹지 않을 것이다. 수신료, 지상파 다채널방송(MMS), 광고규제 완화 등 가용할 수단은 얼마든지 있다. 없으면 만들 터이다. 이런 막개발로 미디어 생태계는 머지않아 황무지로 변할 것이다.
종편채널은 가히 ‘미디어계의 4대강 사업’이다. 정치논리를 빼곤 추진 동기가 석연치 않고, 긍정적 효과는 찾기 힘들고 폐해만 예견된다. 그 후유증은 복원되기 힘들 정도로 파괴적일 것이란 점에서 그렇다. 거센 사회적 반대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밀어붙이는 일처리 방식까지 닮은꼴이다. 4대강 사업이 우리의 물리적 터전인 금수강산을 유린하는 데 비해 종편은 정신적 젖줄인 여론과 문화를 타락시킨다는 차이만 있다. 난 새해 벽두부터 또 ‘악마를 보았다’.
김재영 충남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