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남기 논설위원
참 특이하다. 청와대가 내놓은 ‘일기가성’(一氣呵成)이란 새해 화두 말이다. 나라의 발전과 번영을 기원하는 사자성어는 많다. 그런데도 굳이 “일을 한번에 매끄럽게 처리한다”는 일기가성을 썼다. 이명박 대통령의 신년사대로 “선진국의 문턱을 단숨에 넘어가자”는 뜻으로 알고 그냥 넘어갈 수 있다. 하지만 시화연풍(時和年豊)이나 일로영일(一勞永逸) 같은 이전 것들에 비해 왠지 낯설어 보인다. ‘단숨에 해치우자’는 뜻이 자꾸 눈에 들어온다. 도대체 뭘 해치우겠다는 것일까?
궁금증은 의외로 쉽게 풀렸다. 청와대는 지난해 마지막날 개각을 통해 일기가성의 의미를 잘 보여줬다. 감사원장에 내정된 정동기 전 민정수석을 비롯해 박형준 전 정무수석, 이동관 전 홍보수석 등이 일제히 청와대와 정부로 복귀했다. 최중경 경제수석은 지식경제부 장관에, 친이계 핵심인 정병국 의원은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에 내정됐다. 대선 때 선진국민연대를 결성해 이 대통령을 도왔던 김대식 부산 동서대 교수는 국민권익위원회 부위원장에 내정됐다. 그야말로 왕의 남자들의 귀환이다.
이 대통령은 지난 8월에도 이재오, 이주호, 박재완 현 장관을 비롯해 김태호 전 경남지사와 신재민 전 문화부 차관 등 친위세력을 대거 입각시키려다 청문회에서 제동이 걸려 몇명을 낙마시켰다. 하지만 최근 두번의 개각을 거치면서 청와대는 대통령 측근들로 겹겹이 둘러싸인 꼴이 됐다. 사회 각계에서 능력과 명망 있는 사람을 모은 게 아니라 자기가 수족처럼 부리던 사람들을 모두 요직에 배치했으니 일기가성이란 사자성어와 정말 잘 어울리는 진용이다. 국정 업무 전반이 대통령의 말 한마디에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리라는 것을 어렵지 않게 추측할 수 있다.
임기 후반의 권력 누수를 막기 위해 친위세력을 주변에 포진시키는 게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 때도 비슷했다. 하지만 그 결과는 대부분 좋지 않았다. 자신들만의 요새를 구축함으로써 국민과의 소통이 단절되는 결과를 빚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번에는 시기가 이르다. 임기가 두해나 남은 상태에서 측근들로 성벽을 둘렀다. 자신의 주요 업적이 될 사업들을 올해 안에 모두 끝내버리겠다는 뜻이 아닐까? 아마도 내년에 대통령 선거가 있다는 것을 고려한 현실적인 계산일 것이다. 이런 상황에선 당연히 ‘소통’이란 단어가 들어설 자리가 없다.
공자는 <논어> 위정편에서 “군자 주이불비(周而不比), 소인 비이부주(比而不周)”라고 했다. “군자는 두루 친하고 소인은 끼리끼리 친하다”는 뜻이다. 공인이라면 자신에게 맞고 편한 사람하고만 어울려서는 안 되며 여러 집단 및 계층과 소통해야 한다는 얘기다. 하물며 최고 권력자는 말할 것도 없다. 편한 사람들하고 끼리끼리 어울리거나 충성파들로 아성을 구축하는 것은 국정을 실패로 몰고가는 지름길이다.
여기에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 춘추전국시대의 전략가 한비자는 “큰 사람은 … 태산과 바다처럼 좋아하고 싫어하는 것을 가리지 않도록 함으로써 나라와 가문이 풍요로워지도록 한다”고 했고, 묵자는 “자신의 뜻과 같은 이들만 취하려는 이는 큰 지도자가 될 수 없다”고 했다. 그 대상은 대통령 개인일 수도 있고, 집권세력 전체일 수도 있다. 그것이 어떤 것이든 민초들로부터 유리된 ‘그들만의 권력’은 좋은 결말을 맺기가 어렵다.
<교수신문>이 올해의 희망을 담은 사자성어로 민귀군경(民貴君輕)을 내놨다. 백성이 가장 귀중하고, 그다음이 사직이며, 군주는 가볍다는 뜻이다. 당연한 얘기다. 어느 시대나 백성처럼 중요한 것은 없다. 그럼에도 이 말이 유독 눈길을 끄는 것은 일기가성이란 청와대의 화두와 대비되기 때문이다. 일기가성으로 무장한 청와대 참모진과 새 각료진은 마치 돌격대처럼 보인다. 소통과 화합의 정신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 일기가성의 정신으로 똘똘 뭉친 왕의 남자들에게 국민이란 존재가 눈에 비치기나 할지 궁금하다.
정남기 논설위원 jnamk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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