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오피니언 칼럼

[김효순 칼럼] 한-일 군사협력이 거론되는 토양

등록 2011-01-09 18:32

김효순 대기자
김효순 대기자
10일 서울에서 열리는 한국과 일본의 국방장관 회담에서 정보보호협정이나 상호군수지원협정 등의 체결 방안이 논의된다고 한다. 회담을 앞두고 군사협력 선언 등이 거론될 수 있다는 일본 쪽 보도가 있었고, 일방적인 희망사항에 불과하다고 깎아내리는 한국 쪽 당국자들의 반응이 나왔다. 한-일 군사협력 분야에 관한 이런 구도는 이전부터 여러 차례 나타나 제법 익숙한 현상이 됐다.

개인적으로는 1999년 8월 초 제주도 해상에서 벌어진 한국과 일본 해군의 첫 합동재난훈련 때 황당한 체험을 한 것이 떠오른다. 두 나라의 고위급 선에서 조율돼 실시하기로 한 훈련은 예정일이 다가왔는데도 정작 국방부 쪽은 조용했다. 이 문제를 담당하는 편집국의 관련 부서와 기자들에게 점검해보라고 지시를 했지만 별다른 움직임이 없다고 했다. 미묘한 문제라서 훈련이 소리 없이 취소됐는가 생각하던 차에 한 일본 신문의 누리집에 들어가보니 부산항에 정박중인 해상자위대 호위함의 사진이 첫 화면에 버젓이 떠 있었다. 일본의 호위함 3척이 입항했다가 제주도 동남쪽 해상에서 합동훈련을 마친 뒤 돌아갔다.

국방부 쪽은 훈련이 끝난 뒤 브리핑을 할 계획이었다고 하지만 파장이 번져가는 것을 막기 위해 언론에는 최저선에서 노출하기로 면밀한 계획을 짰던 것으로 보인다. 밖으로 내세운 훈련의 명분을 보면 국방부가 그렇게 숨기려 했던 것이 오히려 이상할 정도다. 운항중인 민간선박에서 화재 등의 조난사고가 발생했을 상황을 가정해 두 나라의 해군이 함정, 대잠초계기, 헬기 등을 동원해 승무원을 구조하려고 손을 맞춰보는 것이 훈련의 뼈대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인도적인 목적으로 실시했다고 믿는 전문가는 없었을 것이다.

또한 이런 훈련의 뒤에는 미국의 입김이 있다고 봐야 한다. 미국이 가만있는데 일본이 나서서 설치는 그런 구조는 절대로 아니다. 1965년의 한일협정 자체가 식민지지배의 청산과 역사적 화해를 통한 국교 정상화가 아니라, 미국의 강력한 요구로 3국 동맹 체제 강화를 위한 틀에서 맺어졌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일본은 동아시아에서 미국의 전략적 거점으로 자리잡았다. 1950년 북한의 남침 때 미국이 신속히 병력 파견을 결정하는데 일본의 안보가 우선적 고려사항이었다는 것은 새삼스런 얘기도 아니다. 미국 관리들은 한국과 일본 사이에 역사적 문제가 걸려 있어 3국 군사동맹의 실현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는 것을 잘 안다. 하지만 더 큰 적에 대처하기 위해 ‘작은 문제’로 한국과 일본이 티격태격하는 것을 못마땅하게 생각한다. 일본의 군사력 증강에 대한 한국 사회 일각의 두려움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전문가들이 수두룩하다.

이명박 정부의 안보진영에는 일본과의 군사협력 방향에 대해 한국이 주도적으로 끌고 갈 수 있으니 지나치게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강한 것 같다. 일본이 운용하고 있는 군사위성의 정보를 공유할 수 있고 유사시 군수물자 조달에서 도움을 받기를 기대하고 있다. 일본이 동아시아에서 시장경제·민주주의·인권존중이란 가치를 공유하는 이웃이라며 한국에 접근하는 것도 사실이다. 그렇지만 우리의 근현대사를 되돌아보면 추상적 가치의 공유가 신뢰할 수 있는 이웃임을 보증하지 않는다. 일본은 대한제국을 집어삼킨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에 앞서 우리말을 아는 공작원들을 파견해 정보를 광범하게 수집했다. 제정러시아를 꺾기 위해서는 거액의 공작금을 사회주의 혁명세력에게 전달하고 무기수송의 편의까지 제공했다. 일본의 이런 저력을 우리가 주도적으로 대처할 역량을 갖춰놓기는 한 건가?

더 근원적인 문제는 남북관계이다. 남북관계가 정전체제 성립 이후 최악의 수준으로 곤두박질치지 않았더라면 지금과 같은 군사협력 얘기가 공공연히 나올 수 없을 것이다. 꺼림칙한 한-일 군사협력 강화에 기대기보다는 남북대화의 돌파구를 여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김효순 대기자 hyoskim@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오피니언 많이 보는 기사

윤석열이 연 파시즘의 문, 어떻게 할 것인가? [신진욱의 시선] 1.

윤석열이 연 파시즘의 문, 어떻게 할 것인가? [신진욱의 시선]

“공부 많이 헌 것들이 도둑놈 되드라” [이광이 잡념잡상] 2.

“공부 많이 헌 것들이 도둑놈 되드라” [이광이 잡념잡상]

‘단전·단수 쪽지’는 이상민이 봤는데, 소방청장은 어떻게 알았나? 3.

‘단전·단수 쪽지’는 이상민이 봤는데, 소방청장은 어떻게 알았나?

극우 포퓰리즘이 몰려온다 [홍성수 칼럼] 4.

극우 포퓰리즘이 몰려온다 [홍성수 칼럼]

‘영혼의 눈’이 썩으면 뇌도 썩는다 5.

‘영혼의 눈’이 썩으면 뇌도 썩는다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