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석 만화가
나는 요즘 한 포털사이트에 <좀비의 시간 2>를 연재하고 있다. 한국만화영상진흥원의 지원이 없었더라면 포털 연재는 어려웠을 것이다. 그림체가 이상하다는 댓글을 남기시는 분들이 많다. 아마도 생전 처음 보는 당혹감에서일 것이다.
1990년대 중·후반 내가 처음 만화를 시작한 것은 비주류 잡지였다. 주류 매체에 연재하고 싶었지만 매번 퇴짜를 맞았다. 당시 같이 활동하던 작가분들 중에는 엄청나게 실험적이고 충격적인 만화를 그리는 작가들이 많았던 걸로 기억한다. 일부러 왼손으로 그리는 낙서만화가부터, 겉은 멀쩡한데 정신병동에 붙어 있을 법한 그림을 주무기로 하는 만화도 있었다. 자칭 만화 시인이라며 활동하던 작가도 있었다.
심지어 입체 만화 밴드라는 것도 만들어 공연도 하고 했으니, 말 다 했지. 그때나 지금이나 이른바 비주류 작가들의 만화 발표는 힘든 일이었다. (지금처럼 인터넷 문화가 발달하기 전) 대중들과 만날 기회가 적을 수밖에 없었다. 눈만 뜨면 보이는 일본 만화 비슷한 그림체의 한국 만화들이 전부였다. 마치 골방에 가둬놓고 한가지 만화만 보여준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러니 대중들의 머릿속엔 ‘만화는 이런 거야’라고 각인되고도 남을 일이었을 게다. “이상한 그림체”라는 그 댓글의 지적은 결국 독자의 잘못이라기보단 장사꾼들의 잘못이 큰 것이라 볼 수 있겠다.
영화를 좋아하는 나는 오락영화도 보고 실험영화, 컬트영화도 재밌게 본다. 아주 잘 만든 영화보다 뭔가 부족한 듯 거친 그들의 상상력이 내 만화작업에 아주 큰 자극이 되기 때문이다. 영화 말고도 소설이나, 음악, 미술 모든 예술 분야에서 실험과 파괴는 발전에서 중요한 요소지만, 그런 거 하면 작가의 생활은 힘들어진다. 오로지 흥행과 유행의 법칙을 따라야 먹고살 수 있다. 아니면 학습만화를 그리는 수밖에 없다.
실험성이 강한 작품들이 저변에 깔려 있어야 수준 높은 걸작 만화들도 나오는 거고 흥행작들이 나올 수 있는 게 아니겠는가. 오히려 그들에게 든든한 지원을 해주어야 하는 게 옳은 것이 아닌가? 대중들의 만화 보는 눈도 자연스럽게 높아지고 말이다. 몇몇 출판사가 좋은 작가주의 만화들을 알리기 위해 힘든 여건 속에서 책도 펴내고 고군분투하고 있지만 여전히 역부족이다. 그나마 자신의 스타일을 지키겠다고 고집 피우는 일부 외골수 작가들은 일거리가 없어서 만화판을 떠나거나 미술 쪽으로 전향하고 있다.
그렇다고 희망이 없는 것은 아니다. 나는 대중과 직접 소통하는 지금이 작가들에게 오히려 기회라고 본다. 어떠한 방법으로든 꾸준히 자신의 만화를 발표하고 대중들과 소통해야 한다. 작가주의라고 골방에 숨어서 자기만족에 그치는 만화 그리는 시대는 지났으니까. 작가주의의 장점만 최대한 살려서 말이다. 충분히 경쟁력이 있다고 본다.
각 포털사이트에서 실험성 강한 만화를 발굴하고 한두편씩 연재할 기회를 주거나 했으면 좋겠다. 실험적인 작가들만 따로 지원해주는 코너를 만들어서 발표하게 하고, 과거 만화들 소개도 해줬으면 좋겠다. 적어도 대중들이 지금 보는 만화 말고도 이런 다양하고 폭넓은 만화의 세계가 있다는 것을 접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으면 좋겠다.
여러 해 동안 <고래가 그랬어>에 ‘을식이는 재수없어’를 연재하면서 “아이들 독자가 어른보다 낫다”는 걸 느낀다. 어른들은 잣대를 대고 내 만화를 보지만 아이들은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어른들이 그 잣대만 조금 허문다면 골치 아픈 세상일들 반은 줄어들 거라고 생각한다. 우선 나부터 실천에 옮겨야겠다.
이경석 만화가
이경석 만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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