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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한겨레 프리즘] ‘복지 포퓰리즘론’의 허구

등록 2011-01-16 20:56

박현 경제정책팀장
박현 경제정책팀장
복지논쟁이 벌어지면서 집권세력이 이른바 ‘복지 포퓰리즘론’을 전가의 보도처럼 꺼내들고 있다. 집권당 대표, 기획재정부 장관, 대통령까지 총출동했다. 서울시장도 한자리를 차지했다. 이들은 야권이 선거용으로 과도한 복지를 약속해 경제를 망치려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들의 주장은 상당 부분 근거가 없거나 사실을 왜곡한 것이다.

‘망국적’ 복지 포퓰리즘론의 단골메뉴로 내세우는 게 아르헨티나 사례다. 20세기 초 세계 10대 부국이었던 나라가 2001년 국가부도 사태까지 맞았으니 극적 효과까지 더해지면서 대중들을 현혹한다. 이들은 페론주의라 불리는 포퓰리즘 탓에 이 나라가 망조가 들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는 현실을 아전인수 식으로 해석한 것이다. 아르헨티나는 후안 페론의 집권기(1946~1955년) 훨씬 전인 1930년대에 이미 쇠퇴의 길로 접어들었다. 19세기 말~20세기 초 영국과의 특수관계를 발판 삼아 농축산물 수출대국으로 성장을 구가했지만, 1차대전과 대공황, 영국의 몰락을 계기로 수출이 급감하면서 성장 동력을 상실했다. 당시 보호무역주의에 대응해 주요 상품을 국내에서 생산·소비하는 ‘수입대체 산업화’ 전략으로 선회한 것은 나라의 미래에 먹구름이 끼게 했다. 중남미 저발전의 가장 큰 원인은 수출주도형 성장모델의 동아시아와 달리 수입대체 산업화 전략을 선택했기 때문이라는 게 경제학계의 정설이다.

여기에다 1930년 쿠데타로 집권한 군부와 지주세력이 부를 독점하면서 빈곤이 만연했다. 페론은 복지 확충과 노조 활성화(페론주의)를 통해 이런 불공평한 사회를 개혁하려 했던 것이다. 영화 <에비타>로도 유명한 페론의 부인 에바 페론이 오랫동안 가난한 사람들로부터 ‘산타 에비타’로 추앙받은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2001년 디폴트를 선언한 것은 1980년대 이후 금융개방·민영화 등 신자유주의 정책과 달러와 1대1로 교환하는 고정환율제 탓이 가장 컸다. 이렇게 볼 때, 국가 부도를 페론주의 탓으로 돌리는 것은 나가도 너무 나간 것이다.

현 집권세력이 북유럽을 닮아서는 안 될 ‘위기의 복지국가’로 거론하는 것도 현실을 왜곡한 것이다. 이들은 북유럽 국가들이 과도하게 복지지출을 늘리다 경쟁력을 상실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보편적 복지’의 대표 격인 스웨덴의 경우 복지지출이 미국보다 월등히 많은데도 2000년 이후 연평균 경제성장률이 미국보다도 높다. 이는 성장지상주의자들의 공상과는 달리 스웨덴이 복지 확충과 함께 생산성도 높이는 방향으로 프로그램을 설계했기 때문이다. 두 가지 예만 들어보자. 핵심 정책인 연대임금제(동일노동 동일임금)는 산업 평균 임금을 지급하지 못하는 경쟁력 없는 기업들의 퇴출을 유도하는 산업합리화 정책이기도 했다. 여성과 55~64살 고령자의 높은 경제활동 참가는 경쟁국에 견줘 생산성을 높였다.

집권세력은 근거도 빈약한 복지 포퓰리즘을 퍼뜨리는 데 에너지를 소비하는 대신, 방대한 사각지대가 존재하는 우리의 열악한 복지 현실을 개선하는 데 힘을 쏟아야 한다. 그것이 복지는 물론 성장도 잡는 길이다. 우리나라는 ‘IMF 충격’ 이후에도 10년 이상 강도 높은 개방과 노동유연화, 자영업 구조조정 정책을 밀어붙여왔다. 이런 것들이 나라를 극도로 효율화시켰을 수는 있으나, 국민들의 삶은 피폐하게 만들었다. 그 반작용임에 틀림없는 세계 초유의 저출산·고령화 현상은 20년 후 한국을 ‘잠재성장률 1%대’ 국가로 추락시키는 첫째 요인이다. 기득권층의 성장지상주의와 복지홀대주의야말로 ‘망국적’이라는 사실을 그들은 언제쯤 깨닫을 수 있을까.

박현 경제정책팀장 hyun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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