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적으로 확산되는 구제역으로 인해 살처분한 가축이 200만마리에 이른다. 600여만마리를 살처분한 2001년 영국의 구제역 악몽을 되살리게 하는 규모이다. 축산업 및 관련산업은 물론 관광산업에도 영향을 끼칠 수 있어 경제 전반에 큰 피해가 우려된다.
구제역이 발생할 가능성에 대한 대책으로는 농장에서의 방역소독, 축산인의 해외여행 신고 의무화, 국경검역의 강화가 주로 거론되고 있다. 이는 필요한 대책이나 근본적 해결방안이 될 수 없다.
사료자원이 부족한 우리로서는 수입사료 사용이 불가피하다. 철저한 국경검역으로 어느 정도 통제할 수 있겠지만 위험은 상존한다. 농장 근로자는 외국인 없이 충당할 수 없는 실정이고, 가축분뇨의 상당량은 지금까지 해양투기하여 처리했다. 이런 상황에서 앞으로의 축산업은 물론 농업 전반에 걸친 광범위한 논의가 필요하다.
덴마크는 작은 나라이나 세계에서 손꼽히는 양돈국가이다. 이를 가능하게 하는 것은 순환농업이다. 가축분뇨가 선순환되도록 하는 정부의 대책·지원방안이 필요하다.
쌀산업 위주의 농업에서 우리 밀·콩을 비롯한 다양한 작물이 재배·확대되는 순환농업은 한계를 초과한 가축분뇨를 지역 내에서 순환할 수 있게 한다. 국제협약에 의해 2012년부터 축산분뇨 해양배출 전면 금지에 대한 대처방안이기도 하다.
농민의 다수를 차지하는 소농에게 적합한 다품종 소량생산은 쌀소비 감소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농업에 하나의 활로를 뜻한다. 환경과 가축이 공존하는 지속가능한 농축산업을 영위할 수 있다.
인간의 건강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며 건강을 위해 어느 때보다 운동의 중요성이 강조되고 있다. 사람이나 동물이나 운동이 중요한 것은 마찬가지이다. 우리나라 가축의 운동량은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동물의 운동량 부족은 면역력이 떨어지는 주된 원인이라고 생각된다.
동물복지에 더 관심을 기울이는 것은 질병의 예방 차원에서도 중요하다. 자연환경에 근접한 쾌적한 축사 및 시설에 대한 정부지원 역시 필요하다. 이러한 조처는 가축의 면역력을 높여 구제역은 물론 서해안 지역에 이미 발병이 보고되어 확산이 우려되고 있는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로 인한 국가적 재난을 사전에 예방하는 대책이 된다.
쾌적한 농축산환경은 생태농업 및 관광산업으로 이어진다. 이는 고용불안, 노후불안으로 증가추세에 있는 유능한 귀농인구를 수용하는 기반이 될 수 있다.
이번 구제역 사태는 농업·농촌의 문제가 국가적 재앙을 유발할 수 있는 또 하나의 사례를 보여준다. 인구 감소와 농사를 지으려는 인력 부족으로 국가경제에서 농업 비중은 낮아지고 농업의 공동화 현상이 진행되고 있다. 식량안보를 넘어서 지역공동체가 해체되어 지역안보마저 우려되는 상황이다.
과학이 아무리 발달해도 농업을 통해서만 식량생산이 가능하다. 물론 값싼 농산물을 세계시장에서 현재 쉽게 구입할 수 있다. 그러나 돈을 주고도 살 수 없는 상황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선진 각국에서는 농업에 막대한 보조금을 들여가며 보호·육성하는 실정이다.
구제역은 2000년, 2002년과 2010년 초에도 발생한 바 있다. 그러나 특히 이번의 경우는 거의 통제불능 상태에서 전국적으로 확산되고 있다. 이번 사태는 단순한 방역 차원의 문제를 넘어서 농정 전반에 걸친 검토가 필요함을 시사한다.
구제역은 현재 한국의 농축산업과 농촌 현실을 그대로 보여주는 사태이다. 동물복지를 고려하고 가축분뇨의 자원화를 가능하게 하는 순환농업으로 이제 다시 시작해야 한다. 자급사료기반을 확충함으로써 지속가능한 농업을 지향해야 한다. 친환경 농식품을 생산하여 소비자 요구에 부응하며 지역사회의 가치를 재발견해야 한다.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