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재훈 교수
2010년은 ‘복지국가 담론’이 본격적으로 전개된 해였다. 진보진영의 전유물처럼 여겨졌던 복지국가라는 단어를 소위 보수인사들이 ‘즐겨’ 사용하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대통령이 나서서 우리나라가 복지국가라고 강변했고, 유력 대선후보 중 한 사람인 박근혜씨가 ‘생활복지, 한국형 복지모델’이라는 용어를 선점하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그런데 복지국가 담론이 “우리는 이미 충분한 비용을 복지에 지출하고 있다, 혹은 이대로 가면 충분히 지출하게 될 것이다”라는 소위 보수진영 논리 전개에 “복지비용 지출이 충분하지 않다, 혹은 지출 방향이나 원칙이 달라져야 한다”고 대응하는 식으로 진행되고 있다. 복지국가 구성 요소 관련 상식이 실종된 것 같아 안타까운 생각이 든다.
“복지비용 지출이 충분하다, 혹은 그렇지 않다”는 식으로 논쟁이 전개되면 복지비용 지출 규모를 둘러싼 관점의 차이 정도를 확인하면서 소위 보수진영의 ‘한국형 복지모델’을 수용할 수 있는 논리적 근거도 허용하게 되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이때 한국형 복지국가는 기껏해야 에스핑안데르센류 복지국가 레짐 유형 분류에서 자유주의 복지국가 레짐 정도 모양새를 갖출 것이라는 전망도 할 수 있다.
하지만 복지국가 구성 요소는 정치제도로서 민주주의 확립, 전쟁 위협에서 벗어난 평화 상태, 일정 수준의 복지비용 지출, 보편적 차원의 사회보장제도 확립임을 고려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현재 복지국가 담론은 ‘민주주의와 평화’라는 두 가지 필수 요소를 간과한 채 전개되고 있다. 이 두 가지 조건이 충족되지 않으면 자유주의 복지국가 레짐 구축도 어렵다.
복지국가(the welfare state)는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과 이탈리아 파시스트 국가 체제를 극복하는 전후 민주적 국가 모델로서 제시됐다. 영국 등 연합국 국민들은 전쟁에서 승리할 경우 복지국가 체제에서 살 수 있다는 희망을 갖고 총력전을 펼쳤고 승리할 수 있었다. 그래서 전후 동유럽 공산독재 국가들이 나름 완벽한 사회보장제도를 실시하던 시기에도 이들 국가를 복지국가라고 표현하지 않았다. 또한 중동 산유국의 국민소득이 아무리 높아도 그 국가군을 복지국가로 표현하지 않는다. 정치제도로서 민주주의가 확립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전쟁중이거나 끊임없이 전쟁 위협에 시달리는 국가를 복지국가라고 부르지도 않는다. 2차 세계대전 후 평화를 전제로 한 역사적 산물로서 복지국가는 탄생했다. ‘복지’가 행복과 안녕을 전제로 하는 개념임을 고려할 때 전쟁(위협)과 복지국가는 어울리지 않는 개념이다.
노인인구 증가 등 인구학적 변동에 따라 복지지출이 자연 증가할 것이다. 그러나 어떤 수준, 어떤 방향으로 복지제도가 변한다 해도 이런 변화는 민주주의와 평화에 토대를 둬야 한다. 그런데 복지국가 담론 전개 전제조건으로서 민주주의와 평화가 우리에게 보장되어 있는가?
국정을 담당하는 사람들 입에서 끊임없이 전쟁 가능성이 흘러나온다. 평화 정착을 위한 대안 제시가 ‘일단 전쟁하고 보자’ 외에 찾아보기 힘들다. 정권의 입맛과 다른 표현을 했다는 이유로 수많은 사람이 일자리를 잃었다. 시민의 광장을 없애려는 시도가 지속되고 있고, 다양한 의견 표현은 언론매체 독과점 체제 구축과 각종 규제·탄압으로 위축되고 있다. 다른 생각을 말하고 실천했다는 이유 때문에 이제는 백주에 정치테러까지 당할 수 있는 상황이 다시 오고 있다.
민주주의와 평화를 어떻게 구축할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한 비전 제시 없는 복지국가 담론은 말장난에 불과하다. 그리고 대한민국이 지금 복지국가가 아닌 이유는 복지지출 수준이 낮아서일 뿐 아니라 찾아올 듯했던 민주주의와 평화가 다시 우리 곁을 떠나고 있기 때문이다. 정재훈 서울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민주주의와 평화를 어떻게 구축할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한 비전 제시 없는 복지국가 담론은 말장난에 불과하다. 그리고 대한민국이 지금 복지국가가 아닌 이유는 복지지출 수준이 낮아서일 뿐 아니라 찾아올 듯했던 민주주의와 평화가 다시 우리 곁을 떠나고 있기 때문이다. 정재훈 서울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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