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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문화칼럼] 귀환 없는 여행의 조건

등록 2011-01-28 18:18

편혜영씨.
편혜영씨.
박민규 작가의 소설 중에 <딜도가 우리 가정을 지켜줬어요>라는 작품이 있다. 세일즈를 하는 주인공이 옛 동료를 우연히 만나는데, 동료는 평택·안성·천안 같은 곳에서 발붙일 곳을 찾지 못해 새롭게 ‘달’에 판로를 개척했다고 고백한다. 달이라니. ‘달’이 평택·안성·천안 옆동네도 아니고.

하지만 거길 어떻게 갔느냐고 묻자 동료는 ‘내비에 찍고 줄곧 가면 나온다’고 태연히 대답한다. 그리고 이어지는, 산소도 없이 어떻게 사느냐는 질문에는 ‘돈 없이 사는 거보다 위험하진 않’다고 대답한다. 이 정도의 능청스러움에는 그런가 보다 하고 독자로서도 태연해질 수밖에 없는 태도가 있다.

주인공 역시 과연 그렇군, 하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동료가 했던 것처럼 내비게이션에 의지해서 달린다. 기왕 가는 것이니 달보다 먼 화성으로.

이 소설이 다시 생각난 건 얼마 전 읽은 뉴스 때문이다. 미국 <폭스뉴스>에 따르면, 화성 편도여행에 지원자가 400여명이나 몰렸다고 한다. 화성 유인탐사는 귀환 과정이 기술적으로 어렵고 비용이 많이 들기 때문에 편도만이 가능한데도 말이다. 물론 실행 여부는 불투명하지만 잘하면 몇십년 뒤에는 박민규 작가의 소설처럼 ‘내비에 찍고’ 달이나 화성에 갈 수 있는 시대가 올지 모른다는 기대감을 주는 동시에 외계로의 이주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는 걸 확인할 수 있는 뉴스였다.

귀환 없는 화성 여행의 신청자 중 한 사람은 지원 동기에 ‘나는 고독과 잘 어울리고, 장비를 잘 다루며, 내 손으로 집 세 채를 지었다’고 적었다고 한다. 화성에서는 혼자 있을 게 분명하니 고독을 견딜 줄 알아야 하며, 무인도나 마찬가지일 테니 생존에 필요한 뭔가를 손수 만들 줄 알아야 하고, 그러니 장비를 잘 다뤄야 한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과학이나 엔지니어링, 수학 등을 전공해야 하며 이와 관련한 근무 경험이 있어야 한다는 지원 조건 때문에, 나와는 애당초 상관없는 일이지만, 그 정도의 일을 너끈히 해낼 수 있는 훌륭한 지구인들이 돌아올 가망성이 희박한 화성을 새로운 주거지로 선택했다는 것은 흥미롭다. 가급적 떠나고 싶을 만큼, 지구는 이미 상업적 정치적 역사적 환경적 판로에 대한 희망을 잃은 별인지도 모른다. 지구 어딘가에서의 삶은 분명 화성보다 황폐한 공기가 떠돌 것이고, 산소가 충분히 있음에도 단지 돈이 없기 때문에 질식할 것처럼 간신히 생명이 유지될 것이다. 지구 어디에서나 삶은 늘 사람들 사이에 둘러싸여 있는 것 같지만 실은 아무도 없는 것처럼 단절되고 외롭고 고독할 게 분명하다. 애당초 달이나 화성에 사는 것처럼 말이다.

사십년이 조금 안 되게 지구에서 살아가고 있는 나는 지구를 좋아하는 편이다. 우주에 대한 동경과는 별도로 사는 데에는 역시 지구가 최고의 별이라고 생각한다. 이유는 간단하다. 지구에는 내가 원하는 거의 모든 것이, 가족과 친구와 책 같은 것이 다 있기 때문이다. 내가 살아갈수록 지구의 수명이 주는 게 안타까울 뿐이다.

생각해 보면 화성까지 갈 것도 없이 우리 모두는 지구에서 삶이라는 귀환 없는 여행 중에 있다. 그 여행을 좀더 즐겁게 하려면 화성에서 살아갈 태세를 갖추듯, 고독을 즐길 줄 알아야 하고, 기계 장비에 적응해야 하며, 손수 집을 짓는 정도까지는 아니지만 살아가는 데 필요한 것들을 스스로 하려고 애써야 한다.


그러고 보면 어디에서건 삶을 사는 데 필요한 최소한의 것은 고독을 이기는 힘과 자립, 그 둘인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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