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준현 사회부문 선임기자
“소는 누가 키워?” 남자는 여자에게 다그친다. 누가 소를 키울지는 이미 정해져 있다. 그건 여자들의 몫이라고 수십번도 더 닦아세워왔다. 온 나라가 다 본다는 개그프로에서 벌써부터 그렇다고 못박았다.
물론 현실에서는 누가 소를 키워야 하는지 규칙이 따로 있다. 오십대 후반인 형은 지난해 회사를 그만두고 고향에서 소를 키우고 있다. 형수는 이미 다른 일을 하고 있기 때문에 소를 키울 수 없다. 소는 무조건 형이 키운다. 설을 맞기 며칠 전 형한테 전화를 했다. 구제역이 마침내 고향까지 덮쳤다는 보도 때문이었다.
“이번 설에는 소한테 세배했다.”
형은 이번 설에는 차례상에서 같이 만나보기 힘들겠다고 했다. 구제역이 온 나라를 다 휩쓸어도 내 소들한테는 제발 오지 말아야 할 텐데…. 그런 노심초사 때문에 전전긍긍하고 있을 게 분명했다. 얼마 전 태어난 송아지를 포함해 모두 11마리의 소가 형의 머리와 발길을 꽁꽁 묶었다. 사람이 자신의 생각대로 행동하지 못하고, 환경재앙이나 전염병에 따라 움직여야 한다고 생각하니 새삼 끔찍하다.
축생이 인간을 결박하는 현실을 보니, 소·돼지·닭에게 세배까지는 아니더라도 존중해야겠다는 생각이 번쩍 든다. 살처분한 가축의 수가 300만마리를 넘어섰지만 아직도 진정 기미를 보이지 않는 것은 단지 방역의 허술함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이 엄청난 재앙과 반생명적 현실에서 종교인들은 우리 사회 현실과 우리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는 행사도 잇따라 열고 있다.
시골에서 돌아와 이메일을 열어보니 끔찍한 것은 또 있었다. 설 전에 쓴 유전자원 보호림인 강원도 정선 가리왕산에 스키장을 추진한다는 기사와 관련된 편지들이었다. 구제역 못지않은 재앙이 인간이 저지르는 환경 파괴라는 생각으로 곧장 이어졌다.
내용은 주로 산림유전자원 보호구역이란 것도 다 좋은데, 지난 시기에는 침묵하다가 왜 지금에야 문제를 제기하느냐는 것이었다. 나 역시 이번에 취재를 하면서 상당히 의아스러운 일이 그런 문제였다.
강원도가 현행 산림보존법까지 어겨가면서 무리하게 스키 슬로프를 추진하는데, 이 나라의 정부나 환경단체와 학자들은 도대체 무얼 하느라 한 줄의 비판조차 제대로 내놓지 못했는가 하는 의문이었다.
언제부턴가 지역발전에 도움이 된다는 논리로 몰아붙이면 상대방이 아무런 말도 할 수 없게 됐다. 겨울올림픽을 유치하려는 강원도에서도 그런 듯했다. 충남에는 세종시가 있고, 호남에는 서해안 개발이라도 있지만 이곳에는 올림픽밖에 없는 게 아니냐고. 취재 과정에서 강원지역에서 오랫동안 스키장 건설에 관여한 전문가를 인터뷰할 수 있었다. 신문에 싣지 못한 중요한 얘기들을 여기에 전한다. 그 전문가의 얘기를 요약하면 ‘겨울올림픽이 열리더라도 토건족만 돈을 벌고, 뒷감당은 국민들의 세금으로 충당해야 한다’는 것이다. “동계올림픽을 하고 나면 재정적으로도 적자가 날 것으로 본다. 스키리조트는 이미 전국에 15곳으로 포화상태다. 해외 사례를 보더라도 올림픽에서 적자가 나면 국민 세금으로 채워야 한다. 한마디로 토건족의 올림픽 마케팅이다. 그 돈 2분의 1만 써도 강원도는 발전한다.” 최근에 개장한 한 리조트의 경우 골프장 8홀을 포함해 모두 4300억원이 들어갔다고 한다. 엄청난 돈이다. 한 시민단체 활동가도 “강원도의 힘은 천혜의 자연환경인데, 자칫하면 환경과 재정 모두 골병들 수 있다”고 우려했다. 구제역으로 숨진 짐승들의 비명이 유전자원 보호림에 깃든 짐승들의 비명으로 이어지지나 않을지 걱정이다. 손준현 사회부문 선임기자 dust@hani.co.kr
언제부턴가 지역발전에 도움이 된다는 논리로 몰아붙이면 상대방이 아무런 말도 할 수 없게 됐다. 겨울올림픽을 유치하려는 강원도에서도 그런 듯했다. 충남에는 세종시가 있고, 호남에는 서해안 개발이라도 있지만 이곳에는 올림픽밖에 없는 게 아니냐고. 취재 과정에서 강원지역에서 오랫동안 스키장 건설에 관여한 전문가를 인터뷰할 수 있었다. 신문에 싣지 못한 중요한 얘기들을 여기에 전한다. 그 전문가의 얘기를 요약하면 ‘겨울올림픽이 열리더라도 토건족만 돈을 벌고, 뒷감당은 국민들의 세금으로 충당해야 한다’는 것이다. “동계올림픽을 하고 나면 재정적으로도 적자가 날 것으로 본다. 스키리조트는 이미 전국에 15곳으로 포화상태다. 해외 사례를 보더라도 올림픽에서 적자가 나면 국민 세금으로 채워야 한다. 한마디로 토건족의 올림픽 마케팅이다. 그 돈 2분의 1만 써도 강원도는 발전한다.” 최근에 개장한 한 리조트의 경우 골프장 8홀을 포함해 모두 4300억원이 들어갔다고 한다. 엄청난 돈이다. 한 시민단체 활동가도 “강원도의 힘은 천혜의 자연환경인데, 자칫하면 환경과 재정 모두 골병들 수 있다”고 우려했다. 구제역으로 숨진 짐승들의 비명이 유전자원 보호림에 깃든 짐승들의 비명으로 이어지지나 않을지 걱정이다. 손준현 사회부문 선임기자 dus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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