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현 경제정책팀장
박현
경제정책팀장
경제정책팀장
2006년 기획예산처와 재정경제부(현재 기획재정부로 통합)를 출입할 때 최대 이슈는 단연 복지 논쟁이었다. 많은 이들의 절박한 삶이 걸려 있었으니 당연했다. 그러나 5년이 지났건만 바뀐 것은 거의 없다. 서민들의 삶은 나아지지 않았고, 양극화와 저출산이라는 이 시대의 과제는 허공을 맴돌 뿐이다. 정부는 감세의 효험을 기대하는지 ‘찔끔’ 복지에 그치고, 정치권은 공수만 바뀌었을 뿐 여전히 ‘논쟁중’이기 때문이다. 정작 중요한 복지재원 마련 방안이 기득권층의 강고한 벽에 부닥치는 현실도 5년 전과 달라지지 않았다.
2006년 8월30일 서울 서초동 기획예산처 기자회견장. 정해방 당시 차관은 “복지 없이는 성장이 없으며, 이대로 가면 미래가 없다”며 ‘비전 2030’ 계획을 발표했다. 목표는 성장과 복지 양 측면에서 제도 혁신과 선제적 투자를 통해 삶의 질을 41위에서 2030년 10위로 끌어올리겠다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 복지지출 규모를 2030년 경제협력개발기구 회원국의 2001년 평균 수준(21%)으로 확대할 것을 제안했다. 그는 세금논쟁으로 번질 것을 우려한 듯, 필요재원 액수를 밝히지 않은 채 참여정부 때까지는 증세가 없으며 이후 재원마련 방안은 국민적 논의에 맡기겠다고만 밝혔다.
예상대로 보수언론의 관심은 이런 계획의 필요성이나 세부방안보다는 주로 ‘세금’에 있었다. 회견 뒤 점심 자리에서는 주로 필요재원과 1인당 세금부담액이 얼마인지를 캐묻는 기자들의 질문이 이어졌다. 추궁에 가까운 질문 공세에 결국 관료들은 연간 44조원의 재원이 더 들어가고, 1인당 세금으로 환산하면 연 33만원을 더 부담해야 한다고 털어놨다. 다음날 언론들은 25년간의 필요액수를 합해 ‘1100조짜리 복지 포퓰리즘’이라며 정신 나간 정부라고 몰아붙였고, 이후 국민적 논의가 내팽개쳐졌음은 불문가지다.
물론 이런 악조건 속에서도 참여정부는 복지재원 마련을 위해 나름 노력을 했다. 우선, 세금문제에 관한 공감대를 형성하기 위해서는 조세의 공평성이 선행돼야 하는 만큼 ‘중장기 조세개혁안’ 마련에 나섰다. 선거를 앞두고 악재가 될 것을 우려해 공식 발표는 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정책에 조금씩 반영했다. 대표적인 게 자영업자의 소득탈루 문제였다. 1990년대 탈루율 50%에 이른 자영업자 탈세가 유리지갑인 봉급생활자들의 반발을 부르자, 정부는 오랫동안 봉급생활자의 절반에게도 소득세를 면제해주는 면세점을 운용해온 터였다. 참여정부의 신용카드 소득공제 확대와 현금영수증제도 도입은 자영업자 소득탈루율을 2008년 30% 수준으로 낮추며 과세기반을 확대하는 데 혁혁한 공을 세웠다. 또 예산낭비신고센터를 대대적으로 운영하고, 도로건설 같은 경제예산을 줄이는 등 재정지출구조 개혁에도 나섰다.
하지만 이런 조세개혁과 재정지출구조 개선 노력은 정권이 바뀌면서 퇴색하고 말았다. 특히 자영업자들을 ‘닦달해’ 애써 모은 재원은 주로 부자에게 혜택이 돌아가는 대규모 감세(5년간 약 90조원)에 쓰여버렸고, 4대강 사업 같은 대규모 토목공사까지 벌어진 탓이다.
이번 복지논쟁이 보편적·선별적 복지 구도로 진일보했으나, 복지재원 마련 문제만큼은 원점을 맴돌고 있다. 한쪽에선 재정지출구조와 조세 개혁에 나서는 동시에 증세도 검토하자고 하는 반면, 다른 쪽에선 세금이 늘어나는 것에는 거부반응을 보인다. 제1야당조차 증세 논의를 꺼린다. 그래도 ‘세금을 더 내더라도 복지를 늘리자’는 의견 53.1%라는 <한겨레>의 지난달 여론조사에서 보듯, 달라진 국민들의 인식 변화는 희망의 끈을 놓지 않을 충분한 이유가 될 것이라 믿는다. 경제정책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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