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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이종석 칼럼] 박해받는 정주영의 마지막 사업

등록 2011-02-21 18:27

이종석
이종석
많은 전문가들이 한국 경제를 상징하는 인물을 뽑으라면 주저 없이 고 정주영 현대 명예회장을 첫손에 꼽는다. 그는 근면과 열정뿐만 아니라 시대를 꿰뚫어 보는 통찰력과 기획력을 가진 보기 드문 선구자였다. 그는 미래를 내다보고 세계 최대의 조선소를 건립하고 자동차를 제작했다. 일찍이 해외건설시장에 뛰어들어 경험을 축적함으로써 1970년대 말 불어닥친 중동건설 붐의 최대 수혜자가 되었다. 이러한 현대의 성공은 곧 한국 경제의 성공과 맥을 같이했다.

그러나 유독 그의 생애 마지막 프로젝트였던 대북사업은 정당하게 평가받지 못하고 있다. 정주영은 냉전 해체가 이루어지면 적성국이었던 중국 등 사회주의권이 새로운 경제 파트너가 되고 북한이 결국 시장경제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것을 본능적으로 안 사업가였다. 그는 남북 대결을 넘어 북한의 값싼 노동력을 활용하여 고임금에 시달리는 남한 산업이 부흥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고 남한의 기업들이 북한의 풍부한 지하자원을 활용하며 남한 주민들이 같은 조국 산하인 북녘 땅을 구경할 수 있는 시대를 만들고자 했다. 이를 통해 북한 주민의 생활도 나아지고 북한도 시장경제를 배워갈 것으로 확신했다.

정주영은 1989년 1월 북한을 방문하여 김일성 주석을 면담하고 금강산 관광사업 관련 합의서를 체결하였으며 우여곡절 끝에 1998년 11월에 동해 북방한계선(NLL)을 넘어 금강산 관광선을 띄웠다. 2000년 8월에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만나 북한의 사회간접시설, 기간산업시설, 관광 등에 대해 현대가 30년간 사업독점권을 갖는 합의서를 체결하였다. 그는 금강산 사업 과정에서 쌓은 신뢰 위에 4억5000만달러의 현금을 얹어서 이 사업권을 따냈다.

금강산 관광과 개성공단 등 그가 추진했던 대북사업들을 돌아보면 국민의 정부 시절 남북 화해협력의 시대가 열린 것은 김대중 대통령의 정책과 기업가 정주영의 대북진출 전략이 의기투합한 산물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정주영의 대북사업 밑바닥에는 현대그룹의 경제적 이익이 깔려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현대의 대북사업은 단순히 개별 기업의 이익을 넘어서 분단의 벽을 허무는 국가와 민족의 이익까지 발생시켰으며 그것을 통해 정주영은 단순히 기업가를 넘어서 분단의 벽을 허문 선구자의 대열에 올랐다.

정주영이 난관을 뚫고 대북사업을 추진한 지 13년이 지난 오늘, 우리는 그의 선견지명과 판단의 정확성을 도처에서 확인하고 있다. 많은 이들이 도대체 북한과 같이 통제된 공산국가와 경제협력을 하는 것이 가능하겠느냐고 고개를 저었지만 2003년 6월에 첫 삽을 뜬 개성공단은 단기간에 흑자 구조로 돌아섰다. 10년 전에는 북한을 경제협력의 대상으로 거들떠보지도 않던 중국의 기업들이 자국 내 고임금을 피해 북한 진출을 모색하고 있으며 중국 정부는 낙후된 지린(길림)성의 경제 발전을 위해 나진선봉 항구를 비롯한 북한 북부지방과의 협력을 전제로 한 수백억달러 규모의 발전계획을 세우고 있다. 생활이 풍족해진 중국인들의 북한 관광도 급증하고 있다. 혹자는 북한 경제의 중국 종속을 걱정할 정도다.

그런데 중국 정부나 기업의 대북 경제협력 사업은 많은 경우에 현대와 합의 없이는 원칙적으로 불가능하다. 현대가 이미 사업독점권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현대의 대북사업만 제대로 되어도 북한 경제의 중국 종속은 걱정할 필요도 없다. 그러나 현대의 대북사업 독점권은 세간에 정주영이 키운 인물로 알려진 이명박 대통령에 의해 좌초될 위기에 처해 있다. 금강산 관광은 박왕자씨 피살 사건 이후 2년6개월째 중단되어 있으며 개성공단은 정부의 통제를 받아 겨우 연명하고 있는 실정이다. 대북사업 중단이 장기화되면서 현대는 북한에 점점 사업독점권을 주장하기 어려운 처지로 내몰리고 있다.

역설적이게도 정주영의 대북사업은 이러저러하게 그로부터 은혜를 입은 이가 유난히 많은 이명박 정부에 의해서 배척되고 있다. 감정과 이념적 편견을 넘어선 그의 지혜와 통찰력을 그들이 전수받지 못한 것이 끝내 아쉽게 느껴진다. 전 통일부 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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