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홍 경기대 정치전문대학원 교수/ 전 국회의원
김재홍
경기대 교수·
민포럼 정책위원장 겸 대변인
경기대 교수·
민포럼 정책위원장 겸 대변인
중동지역에 시민봉기가 들불처럼 번진다. 이집트와 튀니지를 시작으로 리비아, 바레인, 이라크, 요르단, 예멘 등 이슬람권 시민봉기는 과연 어디까지 갈 것인가.
아랍인들의 반독재 시위에 연대의식을 떨쳐버릴 수 없다. 우리의 역사가 떠오르기 때문이다. 오랜 군부독재정권의 공작과 공포통치를 겪은 나머지 외상후 증후군에서 헤어나지 못한 세대가 지금도 우리 사회의 중추를 이룬다. 올해는 5·16 쿠데타 50년이 되는 해다.
5·16에 대해 서로 다른 평가를 내릴 수 있다. 1961년 5·16 이후 문민정권이 들어선 1993년 2월까지 32년간 지속된 권위주의 정권의 특징 중 하나는 정신영역의 억압이었다. 사상과 양심, 언론과 교육까지 독재권력이 필요로 하는 정치적 목적에 따라 공작적으로 지배했다. 시민의식과 정치문화의 심각한 왜곡 현상이 나타났다.
미국의 한국학 연구가 브루스 커밍스 교수는 1996년 5월 미국 학계와 언론에 대한 박정희 정권의 공작활동을 분석한 논문 ‘남한의 학계 로비’를 발표했다. 그는 논문에서 “한국은 선비들의 견해를 미국보다 훨씬 심각하게 중시하는 전통이 있는 나라”라고 썼다. 좋은 전통이지만 그래서 독재권력이 대학과 언론사에 정보기관원을 상주시키면서 선비들의 생각을 사전 통제했다는 것은 참으로 역설적이다. 그 시대에 대한 평가가 논란거리인 것은 그렇게 공작적으로 형성시킨 의식 때문이다.
우리 정치문화는 두가지 서로 다른 역사적 경험에 의해 혼효돼 있다. 하나는 조선조 600년과 일제 식민지배 36년, 그리고 군부독재 32년 통치에 의한 신민형이다. 참여와 자아의식보다는 복종의 의무가 강조되는 문화다. 둘째는 항일 독립운동, 4·19 의거, 60~70년대 반독재 민주화운동, 5·18 광주민중항쟁 등에 바탕한 참여형이다. 두가지가 적절한 혼합비율로 균형을 이루면 이상적인 시민문화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불균형적인 신민형 우위 아래 살고 있다.
박정희 정권은 민주주의의 핵심 기제인 정당, 의회, 선거를 무력화시켰다. 공화당은 창당부터 4대 의혹사건으로 조성된 검은돈을 썼다. 중앙정보부가 그 조직의 산실로, 정보공작정치의 극치를 보여줬다. 야당은 대통령의 친위대 노릇을 한 중앙정보부나 청와대 경호실의 감시와 사전공작 대상이었다. 국가권력은 대통령 외에 5대 기둥이던 국회의장, 여당 대표, 국무총리, 대통령 비서실장, 중앙정보부장에 의해 독과점됐다. 군 출신이 차지했던 중앙정보부장과 대통령 경호실장이 실세였다. 주요 문제가 터지면 관계기관대책회의를 가동했고, 주도자는 언제나 중앙정보부장이었다.
박 정권은 경제성장을 이룬 것으로 가장 칭찬을 받는다. 주로 외국 학자들이 이른바 ‘한강의 기적’으로 박 정권을 평가한다. 그 평가엔 미성년 노동, 출퇴근 시간 없는 심야노동, 노조 탄압 등 노동3권의 억압이라는 국민 시련은 포함되지 않는다. 함께 살면서 부대낀 경험이 없어 제3자의 시각으로 결과만 보았기 때문이다.
자신의 권력 강화 수단으로 이용하기 위한 개발독재라는 점도 문제였다. 아시아에서 개발독재로 성장을 이룬 대만이나 싱가포르 등과 비교해 봐도 삶의 질 측면에서 우리가 낫다고 보기 어렵다. 박 정권의 개발독재는 사회적으로 얼마나 많은 희생을 치렀는가. 인권, 언론, 노조, 학원, 심지어 사법부에 대한 탄압과 공작은 세계에 유례가 없는 통치수법이었다.
5·16과 박정희 정권은 더욱 잔혹한 복고반동 체제를 키웠다. 80년 5월 광주민중항쟁에 대한 살상진압의 지휘 집단인 정치장교 친위대 하나회가 그것이다. 이어 박정희 후계체제 아래서 80년대 우리 사회는 수많은 대학생과 노동자들의 투신과 분신을 겪었다. 지금의 아랍권 못지않은 고통이 온 시민사회를 후벼댔다. 그런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입고도 산업화의 공적만 강조한다면 외상후 증후군에서 벗어나지 못한 증거 아닌가.
5·16과 박정희 정권은 더욱 잔혹한 복고반동 체제를 키웠다. 80년 5월 광주민중항쟁에 대한 살상진압의 지휘 집단인 정치장교 친위대 하나회가 그것이다. 이어 박정희 후계체제 아래서 80년대 우리 사회는 수많은 대학생과 노동자들의 투신과 분신을 겪었다. 지금의 아랍권 못지않은 고통이 온 시민사회를 후벼댔다. 그런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입고도 산업화의 공적만 강조한다면 외상후 증후군에서 벗어나지 못한 증거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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