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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기고] 역사교과서 선진국 / 서현주

등록 2011-03-01 19:16

서현주
서현주
서현주
동북아역사재단 연구위원
전쟁은 사람의 마음속에 있는 증오에서 시작된다. 1차 세계대전의 참화를 겪은 프랑스의 교사들은 끔찍한 전쟁의 재발을 막기 위해서는 교과서에서 이웃 나라에 대한 증오나 적대감(편견), 무관심을 조장하는 내용을 없애야 한다고 생각했다. 독일 교사들과 함께 양국 교과서 개선 작업을 시작했다.

이들의 노력은 1935년 제1차 독일-프랑스 교과서 권고안으로 발표됐다. 나치의 집권 때문에 독일에서는 시행되지 못했지만 프랑스의 교과서 편찬에는 상당한 영향을 끼쳤다. 2006~08년에 독일과 프랑스에서 공동 역사교과서가 동시에 발간되어 양국의 고등학교 수업에서 실제로 사용되고 있는 것은 이처럼 오랜 역사를 가진 교과서 개선 활동에 바탕을 두고 있음은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텔레비전을 비롯한 언론과 인터넷, 그리고 부모와 지역사회 등 학생들의 역사인식에 영향을 주는 요소는 많다. 그중에서 역사교과서가 가지는 위상은 여전히 특별하다. 교과서는 국가와 사회에 의해서 선택되고 공인된 내용(역사적 사실과 해석)을 담아 전달함으로써 특별한 ‘권위’를 지닌다. 그래서 학생들의 역사의식과 정체성 형성에 큰 영향을 미친다. 그렇기에 독일과 아일랜드, 캐나다 등 전쟁과 내란, 원주민 억압 등을 경험한 나라와 지역에서 교과서를 통해 아픈 과거를 가르치면서 화해와 공존을 모색하는 사례가 적지 않다.

지난 2001년 이래 교과서 서술을 둘러싼 한·일, 혹은 한·중·일 갈등이 주기적으로 반복되어 나타나고 있는 동북아지역의 경우는 이와 정반대의 양상을 보이고 있다. 교과서가 국가와 지역간 아픈 과거의 상처를 치유하고 화해를 모색하는 장이 되기보다는 오히려 그것을 확대시키는 매개체 구실을 하고 있다. 일본에서 2001년 기존의 역사서술을 ‘자학사관’으로 비판하며 침략과 식민지 지배를 정당화한 후소사판 중학교 역사교과서가 검정을 통과했다. 그 뒤 4년 주기로 돌아오는 검정 결과 발표와 교과서 채택 때마다 교과서 문제는 동북아 국가간 외교현안의 하나가 되고 있음은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이다.

일본에서 올해는 특히 개정된 교육기본법과 새 학습지도요령 및 해설서에 근거하여 서술된 중학교 교과서에 대한 검정 결과가 발표되는 해이다. 주지하다시피 2008년 7월에 공시된 학습지도요령 해설서에 일본의 독도 영유권 주장 기술의 필요성이 명기되었다. 이 때문에 이번에 검정을 신청한 중학교 교과서에 일본의 독도 영유권 주장이 기술되었을 개연성이 높다.

우려하는 것처럼 독도가 일본의 영토라는 주장이 중학교 교과서에 기술되어 일본 학생들이 이대로 배우게 된다면 한국에 대해 자국의 영토를 차지하고 있는 나라라는 부정적 인식을 갖게 될 가능성이 크다. 동시에 한국 학생들은 러일전쟁 과정에서 강제로 일본 땅으로 편입했던 독도에 대해 또다시 영유권을 주장하는 일본에게서 침략과 식민지 지배를 자행했던 지난 시기 일본의 모습을 떠올릴 것이다.

3월말~4월초에 발표될 예정인 일본 중학교 교과서 검정 결과에 한국은 물론 양식있는 일본의 시민들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 것은 이 때문이다. 교과서 검정의 최종 책임자인 문부과학성을 비롯해 간 나오토 민주당 정부의 고민 역시 적지 않을 것이다. 센카쿠 열도와 북방 영토를 둘러싼 중-일 및 러-일 사이의 영토 갈등이 고조되는 가운데 지지율 급락과 여론의 사퇴 압력에 직면하고 있어 운신의 폭이 크지 않을 것으로 짐작된다.

그러나 상대방에 대한 부정적 인식의 확산이 갈등과 고통으로 점철된 지난 백년간의 양국관계를 넘어 화해와 공존의 새로운 길을 열고자 애써온 양국 정부와 시민사회의 노력에 찬물을 끼얹을 것임은 명약관화하다. 교과서를 통해 상대방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키우기보다는 긍정과 화해의 모습을 형성해 나갈 때 비로소 일본도 역사교과서 선진국의 대열에 합류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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