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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한겨레 프리즘] 석유가 삼킨 50년 / 김영희

등록 2011-03-01 19:39수정 2011-03-02 09:22

김영희
김영희
김영희
국제뉴스팀장
“미스터 프레지던트, 당신의 국민들이 죽어가고 있어/ 사람들은 쓰레기를 먹고 있어/ 뭐가 일어나고 있는지 봐/ 온통 고통이야, 미스터 프레지던트/ 나는 두려움 없이 말해/ 내가 곤란에 빠질 것을 알지만 말야/ 어디서나 불의가 보여.”

지난해 말 22살짜리 튀니지의 래퍼 하마다 벤 아모르(일명 엘 제네랄)가 부른 노래는 튀니지를 넘어 올해 이집트 카이로의 타흐리르광장, 바레인 마나마의 진주광장에 모인 젊은이들의 투쟁가가 됐다. 힙합에 실린 아랍 젊은 세대들의 분노는 불의와 부패, 민주주의의 부재를 향해 있다. 서구에서 자주 인용된 2003년 브루킹스연구소의 아랍 젊은이에 관한 보고서가 현실에 절망한 이들 세대에 “반미와 이슬람급진주의가 근본가치가 되어가고 있다”고 경고한 것과는 번지수가 다르다. 그렇다고 미국식 자유주의의 확산을 뜻하는 ‘프리덤 어젠다’의 승리도 아니다. <알자지라>는 이 지역에서 신자유주의 개혁을 추진해온 대표적인 국가 이집트와 튀니지의 변화는 ‘반신자유주의 혁명’으로 나아갈 수 있다고까지 주장한다.

적어도 아랍의 변화가 반세기 넘게 국제사회 ‘석유의 욕망’에 눌려왔던 이 지역 사람들의 기본권을 되찾는 과정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1945년 미국의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은 사우디아라비아의 압둘 아지즈 사우드 국왕과 “미국이 사우디 석유에 대한 특혜적인 접근을 허가받는 대신, 미국은 사우디 왕조를 안팎의 도전으로부터 지켜준다”는 데 합의했다. 중동지역 왕조들과 비슷한 합의가 잇따랐다.

<뉴욕 타임스>의 칼럼니스트 토머스 프리드먼은 지난 50여년간 이 지역이 전세계, 특히 미국에 ‘거대한 주유소의 집합’이었다고 적나라하게 지적한다. “사우디 주유소, 쿠웨이트 주유소, 바레인 주유소, 이집트 주유소, 리비아 주유소 등등을 향한 우리의 메시지는 일관됐다. ‘여기 딜이 있다. 계속 펌프를 열고 기름값을 낮추고, 이스라엘을 너무 심하게 괴롭히지만 않는다면 너희 안에선 무엇이든 할 수 있다. 국민들의 인권을 빼앗든, 얼마나 부패하든, 여성들을 계속 문맹에 빠뜨리든, 젊은이들의 교육을 외면하든.’”

자, 서구 제국주의를 맘껏 비판하자. 그렇다고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는 책임을 면제받을 수 있는 걸까?

1970년대 이래 중동과 북아프리카는 한국에 돈 벌어주는 국가들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국교 단절을 선언한 페루나 독자 제재에 들어간 오스트레일리아 정도는 아니더라도, 우리 정부는 리비아 상황에 대한 우려 성명 하나 내지 않고 있다. 언론은 상황에 대한 이해보다는 그릇된 인식을 부추긴다. 카다피의 석유시설 사보타주 지시설은 “폭발 지시”로, 이슬람사원 첨탑에 일부 용병들이 대공화기를 쏘았다는 외신은 “미사일”로 부풀려졌다. 우리 언론들 보도대로라면 리비아에서 결전은 이미 몇차례쯤은 끝나야 했다. 서구 언론에 대한 높은 의존도보다 현실적으로 더 큰 문제는 외국 언론의 지엽적이고 불확실한 일부 묘사를 과장하는 우리 언론의 선정성과 조급증이다. 이렇게 아랍의 상황을 ‘선악의 단판승부’로만 본다면, 지금부터 아랍이 밟아야 할 혼란과 고통, 지난하고 복잡한 과정을 우리는 영영 이해할 수 없게 된다.

중동지역까지 들썩거리며 3차 오일쇼크 가능성이 구체화될수록 이런 양상은 더 심화될 것이다. 하지만 수십년간 석유가 삼켜온 아랍의 기본권을 더이상 국제사회는 억누를 수 없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석유값 급등엔 중국과 한국 등 아시아 신흥국의 석유소비 급증이 큰 몫을 하고 있다는 현실 또한, 힘들더라도 외면할 순 없다. 지금이 기회라면, 오일쇼크마저도 지구촌이 견딜 가치가 있는 일이다.

dor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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