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오피니언 칼럼

[한겨레 프리즘] 후쿠시마 서쪽, 체르노빌 동쪽 / 손준현

등록 2011-03-13 20:12

손준현 사회부문 선임기자
손준현 사회부문 선임기자
손준현
사회부문 선임기자
지난 토요일 저녁 한 환경단체 활동가가 집으로 돌아가던 내게 전화를 걸었다. 평소보다 좀 다급한 말투였다. 라디오에서는 일본의 지진해일(쓰나미) 인명 피해와 원자력발전소 방사능 유출 속보가 끊임없이 흘러나왔다.

그날 낮에 나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조선왕릉 가운데 한 곳인 서오릉을 찾았다. 집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이지만 퍽 오랜만이었다.

죽은 왕들이 ‘알박기’를 하지 않았다면 이미 아파트들이 점령했을 공간이었다. 조선의 왕들에게 딱 하나 고마운 게 있다면 서울 주변에 이렇게 녹지공간을 확보해준 점이다. 왕릉의 능선은 ‘에스라인’이다. 그곳에 누워 굴곡진 공제선 위로 하늘을 보면, 눈이 시리게 푸르다는 말이 비로소 실감났다.

말더듬이 얘기가 길었다. 서오릉에서 나와 집으로 가는 길에 그 다급한 전화를 받았다. 전화를 받고 나서, 이렇게 잘 보존된 왕릉의 능선을 넘어 산더미 같은 재앙이 순식간에 우리 삶을 덮칠 수 있다는 생각에 몸서리쳤다. 그 환경단체 활동가 얘기의 뼈대는 ‘후쿠시마 원전 방사능 유출 사고에서 보듯, 체르노빌 같은 대재앙이 먼 나라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1986년 4월 우크라이나에서 발생한 체르노빌 원전 사고는 전세계 최악의 사고로 기록됐다. 원전이 폭발해 우크라이나, 러시아, 벨로루시(현 벨라루스) 등 당시 옛 소련 지역 14만 5000㎢ 이상에 방사성 낙진이 대량으로 공기 중에 흩날렸고 약 800만명이 직간접적으로 방사능에 노출됐다. 9300명이 죽고 33만명이 이주했다. 각종 암 발생과 기형아 출산 급증 등도 보고됐다. 사망자 수가 공식 집계된 것보다 10배는 많을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다시 그 환경단체 활동가는 “원전에서 방사능이 유출된 후쿠시마의 바람이 지금은 태평양 쪽으로 불지만, 풍향은 언제든지 바뀔 수 있다”고 했다.

기상청은 현재 일본에서 바람이 동쪽으로 불어 한반도가 방사능 피해를 입을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했다. 활동가 얘기는 달랐다. 일주일 내내 서풍이 불다가도 한번 동풍이 불면 한반도는 엄청난 재앙을 입을 수 있다고 했다. 일본 국경의 서쪽인 한반도가 재앙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은 체르노빌의 경우를 봐도 알 수 있다.

체르노빌에서 1500㎞나 떨어진 스웨덴의 원자력발전소에서 사고 발생이 가장 먼저 감지됐다. 4월 말에 유출된 방사능의 방출이 5월 중순까지 계속됐다. 방사능은 기상 조건, 특히 풍향을 따라 동유럽 전역으로 번졌다. 폴란드·독일·네덜란드 등에서는 우유의 판매·음용 제한, 채소의 섭취 금지 조처 등이 취해졌다.


체르노빌의 방사능 오염 물질은 2000㎞ 이상을 날아가서 북유럽과 중부유럽을 덮었다. 후쿠시마 원전에서 서울까지 거리는 약 1240㎞다.

지금 나가노 등 일본의 서해안 쪽에서도 여진이 발생하고 있다. 일본 서해안과 우리 동해안에서 지진해일이 발생했을 때, 울진 등에 있는 우리 원전들의 안전을 담보할 수 있는지 꼼꼼히 따져볼 때다. 만에 하나, 그런 곳에서 지진해일이 발생한다면 한반도는 물론 베이징, 상하이까지 안전을 장담할 수 없기 때문이다.

활동가의 얘기가 새삼스런 것은 아니다. 말끝마다 친환경 에너지라며 원전 건설 드라이브를 걸어온 한국에서 이제 진지하게 원전의 안전성 문제를 고민할 때가 됐기 때문이다.

후쿠시마의 서쪽, 체르노빌의 동쪽 한반도에서도 이제 최악의 상황에 대비할 때다. 이런 와중에 이명박 대통령은 아랍에미리트로 떠났다. 이 대통령은 아랍에미리트 원전 수출이 자신의 최고 업적이라고 생각한다고 알려졌다. dust@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오피니언 많이 보는 기사

윤석열이 연 파시즘의 문, 어떻게 할 것인가? [신진욱의 시선] 1.

윤석열이 연 파시즘의 문, 어떻게 할 것인가? [신진욱의 시선]

“공부 많이 헌 것들이 도둑놈 되드라” [이광이 잡념잡상] 2.

“공부 많이 헌 것들이 도둑놈 되드라” [이광이 잡념잡상]

‘단전·단수 쪽지’는 이상민이 봤는데, 소방청장은 어떻게 알았나? 3.

‘단전·단수 쪽지’는 이상민이 봤는데, 소방청장은 어떻게 알았나?

극우 포퓰리즘이 몰려온다 [홍성수 칼럼] 4.

극우 포퓰리즘이 몰려온다 [홍성수 칼럼]

‘영혼의 눈’이 썩으면 뇌도 썩는다 5.

‘영혼의 눈’이 썩으면 뇌도 썩는다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