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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아침 햇발] 우리는 ‘원자력 도박’을 하고 있다 / 조홍섭

등록 2011-03-14 20:26수정 2011-03-14 20:40

조홍섭 환경전문기자
조홍섭 환경전문기자
조홍섭 환경전문기자
지난 12일 일본 후쿠시마 원전 1호기는 심각한 상황에 빠져들고 있었다. 핵연료를 식혀줄 비상노심냉각장치가 작동불능에 빠지자 오전부터 방사능 기체를 외부에 배출하기 시작했다. 오후에는 핵연료에 손상이 일어났음을 가리키는 세슘이 검출되고 방사능 농도가 급증했다. 주민 대피 범위도 늘어났다. 마침내 원전 건물에서 대규모 폭발이 일어났다.

체르노빌 사고가 일어난 지 25년 만에 똑같은 핵 재앙이 이웃나라에서 벌어지는가, 위성방송을 보는데 침이 말랐다. 하지만 공영방송 채널을 아무리 돌려봐도 한가한 오락프로그램만 이어질 뿐 뉴스특집은커녕 자막조차 보이지 않았다. 이 시각 이명박 대통령이 탄 전용기는 원전 기공식 일정이 포함된 아랍에미리트 방문길에 올라 있었다.

다행히 폭발은 원자로에서 스며나온 수소가스가 폭발한 것으로 드러났고, 체르노빌 같은 전면적인 노심 용융으로는 진전되지 않았다. 그러나 최악의 상황에 대비하는 정부의 대응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기상청만 방사능 기류가 우리나라엔 오지 않는다는 설명을 되풀이하고 있었다. 정부에 후쿠시마 원전 사태는 그저 강 건너 불구경인 듯하다.

원자력발전소가 이중삼중의 안전장치를 갖춘 첨단시설이라는 홍보에 익숙한 우리의 눈에 후쿠시마 원전에서 벌어지는 일은 매우 낯설다. 외부 전원이 끊기면 당연히 가동해야 할 비상발전기도 멈췄고, 과열된 원자로를 식히기 위해 소방차까지 동원했다. 마침내 부식을 일으키기 때문에 원전을 못 쓰게 만드는 바닷물까지 끌어들여 원자로를 식히고 있다.

이 모든 걸 천재지변 탓으로 돌리면 간단하겠지만 원전은 애초에 천재지변까지 고려에 넣는 시설이다. 정부의 믿음과 달리 전문가들은 우리나라가 지진의 안전지대가 아니라고 본다.

우리나라에서 역사적으로 가장 큰 피해를 일으킨 지진은 통일신라시대인 779년 경주지역에서 일어났는데 “땅이 흔들리고 민가가 무너져 죽은 자가 100여명이나 됐다”는 기록이 있다. 한국원자력연구원이 초가집을 지어 실험해 추정한 당시 지진의 규모는 6.2였다. 지진의 강도는 그리 세지 않았지만 지반이 약해 큰 피해를 일으킨 것이다.

실제로 1905년 이전에 집이 무너지고 사람이 죽은 기록이 남은 지진 14건 가운데 최소한 6건이 경주에서 일어났다. 경주는 양산단층과 울산단층이 만나는 곳이며, 경주, 포항, 울산 일대는 가장 최근까지 단층운동이 활발하던 곳이다.

문제는 이 지역에 우리나라의 주요 산업시설과 인구가 밀집해 있다는 사실이다. 고리, 월성 등 원전이 가장 많이 들어서 있고 건설중인 곳도 이 지역이다. 후쿠시마 원전은 반경 20㎞ 안 주민 21만명을 대피시켰지만 고리 원전이라면 부산시 일부와 울산시가 이 범위에 포함돼 대피 대상은 100만명을 훌쩍 넘어설 것이다.

원자로가 녹아내리고 방사능이 퍼져나가는 사고가 나야만 원전이 위험한 것은 아니다. 일본이 제한송전에 들어간 것은 일제히 가동이 중단된 원전 의존도가 30%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현재 우리나라는 원전 의존도가 31%이고, 정부는 저탄소 녹색성장의 핵심으로 원자력을 늘려 2030년엔 그 비중이 59%에 이를 전망이다. 만일 원자력에 치명적인 문제가 생긴다면 나라 전체가 암흑에 휩싸일 원자력 도박을 하고 있는 것이다.

원전에서는 노심 용융의 사고 확률이 10만년에 한번꼴이도록 안전설계를 한다. 하지만 지난 30여년 동안 그런 사고는 3번이나 일어났다. 결국 사고는 언젠가 일어나는 것으로 보고 대비책을 세워야 한다. 이제부터라도 국민에게 방사성 물질의 위험성과 대처방법을 상세히 설명하고, 지침을 만들어 알려야 한다.

후쿠시마 원전 사태는 ‘원자력 르네상스’에 타격을 입힐 것이 분명하다. 과연 국내에는 어떤 여론의 변화가 나타날까. 아랍에미리트 원전 수주 뒤 원자력문화재단의 조사에서 ‘원자력이 필요하다’는 응답은 88%, ‘원전은 안전하다’는 답은 70%에 이르렀다. ecothin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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