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행훈 언론광장 공동대표
장행훈
언론인·언론광장 공동대표
언론인·언론광장 공동대표
3월1일 독일의 세계적인 주간지 <슈피겔>이 자국내 최대 일간지 <빌트>(부수 300만 이상)를 향해 공격의 포문을 열었다. 슈피겔은 표지를 빌트의 제호 사진으로 채운 특집 기사에서 이 보수 타블로이드 신문이 보수에 유리한 선정적인 1면 기사를 통해서 앙겔라 메르켈 보수 정부의 정책에 영향을 미치고 스스로 우익 정당의 구실을 하고 있다고 강하게 비난했다.
언론윤리를 준수하는 미디어로 존경받는 슈피겔이 언론사끼리는 공개적으로 서로를 공격하지 않는다는 독일 언론계의 금기를 깨고 보수 언론의 기함 빌트를 공개적으로 공격하게 된 핵심 이유는 간단하다. 독일 최대의 신문 빌트가 언론의 간판을 내걸고 보수 정권의 선전도구 노릇을 하는 중대한 탈선을 더는 묵과할 수 없다는 것을 빌트는 물론 독일 사회에 공개 경고하겠다는 것이다. 루퍼트 머독이 미국에서 <폭스뉴스>를 자기 사업이나 보수 권력의 선전도구로 이용해서 미국 민주주의를 크게 후퇴시키고 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런데 어떻게 빌트가 독일판 폭스뉴스가 되는 것을 방치할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미국의 방송인 데이비드 비커리에 따르면 루퍼트 머독의 폭스뉴스는 오래전에 정상적인 뉴스 매체의 역할을 포기하고 대신 공화당내 가장 반동적인 세력의 선전도구 노릇을 하고 있다. 언론을 부패시키고 언론의 신뢰를 떨어뜨리고 있다. 보수 언론 중에 언론의 본분보다 보수 세력의 선전도구로 만족하는 매체가 많다. 그래도 유럽은 미국보다는 그런 경향이 덜한 편인데 독일 최대의 신문 빌트가 폭스뉴스를 흉내 내려고 하니 슈피겔이 비판에 나선 것은 당연한 반응이다.
슈피겔의 빌트 공격은 결코 즉흥적인 것이 아니다. 탐사보도의 챔피언답게 빌트 문제를 다루기 전에 이 신문의 언론 행태를 조사할 7명의 기자로 탐사팀을 구성해서 신문의 “윤리 기준과 언론의 질”에 관해 치밀하게 취재·분석했다. 그 결과 “의회나 총리실, 정부 각 부처에서 빌트의 보도를 확인해보지도 않고 그것을 민의의 표현으로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는 현저한 경향이 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또 탐사팀의 울리히 피히트너 기자는 독일 최대의 신문이 “독일에서는 한 번도 있어 본 일이 없는 우익 포퓰리스트 정당의 역할을 하고 있다”는 위험한 사실을 발견했다.
빌트는 메르켈 총리보다 더 오른쪽에 있는 “우익 파벌”을 지원했다. 빌트는 우익 포퓰리스트들의 생각을 신문 1면에 큰 제목으로 보도해 사회 의제로 설정하는 구실을 했다. 그래서 슈피겔은 빌트를 우익 여론을 일으키고 선동하는 “방화” 신문이라고 비판했다. 빌트가 독일에서 머독의 폭스뉴스 노릇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독일 민주주의에 대한 위협이다. 따라서 빌트=폭스뉴스가 되는 것을 막아야 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결론이다.
빌트는 머독이 소유한 영국의 <선>과 성격이 비슷한 대중지이다. 1면에는 항상 젊은 반라 여성의 사진이 실리고 범죄나 스캔들 기사를 돋보이게 실어 판매부수를 올리는 타블로이드 신문이다. 머독의 선은 1997년 총선에서 노동당의 토니 블레어를 총리로 만들 정도로 정치적 영향력이 있지만 빌트는 그 점에서 선과 비교가 되지 않았다. 그런데 빌트가 이제 머독의 선이나 폭스뉴스의 나쁜 점을 닮아가고 있는 것이 슈피겔에 의해 드러난 것이다.
세계적으로 보수 언론이 보수 정권의 선전도구 노릇을 하고 있는 것이 하나의 유행병처럼 퍼지고 있다. 한국도 예외가 아니다. 지난 10여년간 조·중·동의 보도 행태가 그것을 입증한다. 보수 언론은 자본, 보수 정권과 유착해서 ‘보수의 철의 삼각형’을 구축한다. 보수 세력이 항구 집권을 하기 위한 기간시설 투자라고 볼 수 있다. 일단 보수의 철의 삼각형이 구축되면 민주주의는 후퇴하기 마련이다. 한국에서도 ‘보수의 철의 삼각형’ 구축이 착실히 진행되고 있다. 방관만 하고 있을 때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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