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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한겨레 프리즘] 후쿠시마와 일본의 미래 / 강태호

등록 2011-03-20 20:07

강태호
강태호
강태호
국제부문 기자
한신 대지진이 일본을 강타한 것은 1995년 1월17일 새벽이었다. 규모 7.2에다 지표면 겨우 15㎞ 아래에서 발생한 도심 직하형 지진이었기에 피해는 엄청났다. 6400여명이 숨졌으며, 4만3000여명이 다쳤다. 재산피해는 당시 일본 국내총생산의 2.5%에 해당하는 10조엔이었다. 불과 2개월 뒤 또다른 재앙과 같은 사건에 일본은 경악했다. 3월20일 신흥종교단체인 옴진리교가 도쿄 지하철에 독가스인 ‘사린’을 살포하는 사건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사망자는 12명, 5000여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오전 8시께 출근길의 시민을 노린 무차별적인 만행이었다. 이틀 뒤 경찰이 덮친 옴진리교 본부 시설에서는 사린만이 아니라 생물학 무기 등 설비가 있었고 이를 살포하기 위한 군용 헬리콥터까지 있었다고 한다. 가히 일본판 ‘알카에다의 원조’라 할 만하다.

16년이 지난 2011년 3월11일 거대한 지진해일이 일본 동북해안 지역을 덮쳤다. 일본은 한신 대지진보다 더 파괴적인 지진해일과 옴진리교의 사린사건보다 더 위협적인 후쿠시마 원전 폭발의 재앙 앞에 다시 직면했다. 95년엔 옴진리교라는 종교가, 지금은 원자력이라는 과학이 만들어낸 재앙 앞에 시시각각 전해지는 피해자들을 보며 두가지가 떠올랐다.

하나는 절체절명의 순간에 직면한 인간에 대한 연민과 일체감이었다. 베스트셀러 작가인 무라카미 하루키는 옴진리교 사건 피해자들의 증언을 담은 <언더그라운드>에서 “그 사람이 다름 아닌 당신이며 나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뉴스가 ‘희생자’라는 명사로 일컫는 그들에게도 나름의 생활이 있고 각자의 인생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려 했다”고 말했다. 우리는 그들과 다르지 않았다.

다른 하나는 일본의 미래다. 많은 이들은 후쿠시마 원전 폭발을 86년 소련의 체르노빌 원전 참사와 비교한다. 참사의 문맥과는 다른 관점에서도 볼 필요가 있다. 85년 소련공산당 서기장이 된 고르바초프는 체르노빌을 글라스노스트(개방)와 페레스트로이카(개혁)를 본격화하는 계기로 삼았다. 체르노빌은 유럽 반핵평화운동의 토양이 됐고 미·소가 핵감축으로 나가는 길을 열었다. 그러나 체르노빌은 그 자체가 소비에트 사회주의 체제의 모순을 집약적으로 보여준 것이었다. 고르바초프의 개혁은 체르노빌을 넘어서지 못했다.

이번 후쿠시마 원전의 문제는 지진해일만으로 설명될 수 없다. 도쿄전력이 원자로 점검 기록을 허위 기재하고, 균열 등의 문제점을 조직적으로 은폐한 사실 등 일본적 시스템의 문제점이 드러나고 있다. 무엇보다 지금은 95년과 다르다. 한신 대지진은 V자형 경기회복에 기여했다. 그러나 일본 경제는 부동산 거품 붕괴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91년 시작된 경기불황의 ‘잃어버린 10년’은 장기침체기로 이어졌다. 여기에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는 진원지인 미국 이상으로 일본 경제를 강타했다. 2009년 선거에서 자민당 ‘55년 체제’를 무너뜨리고 민주당이 집권한 건 일본이 무너지고 있다는 위기감의 반영이었다. 그럼에도 지난 2년여 민주당은 흔들렸고 개혁은 주춤했다.

앞서의 무라카미는 희생자들이 아닌 옴진리교 신자들을 인터뷰한 <언더그라운드 2>에서 가해자라 할 수 있는 이들 또한 광신자들이 아니라 지극히 평범한 사람들이었다고 말한다. 그가 말하려 했던 것은 ‘갑자기 모습을 드러내 미친 듯이 날뛰는 폭력성 앞에서 현실적으로 너무나 무기력하고 무방비한 일본 사회의 구조적 패배’였다. 이번 지진해일을 두고 영국 캐피털 이코노믹스의 줄리언 제솝은 이렇게 말했다. “이보다 더 나쁠 수 없는 시점에 발생했다.” 후쿠시마 이후 일본은 어디로 갈 것인가. kankan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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