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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한겨레 프리즘] 원자력발전소를 반기는 사람들 / 박주희

등록 2011-03-22 20:32

박주희 지역부문 기자
박주희 지역부문 기자
박주희
지역부문 기자
한눈에 마을이 소복이 들어찬다. 해안도로에서 내려다봐도, 마을 아래 방파제에서 올려다봐도 딱 한눈에 들어온다. 산비탈을 타고 나지막한 집들이 층층이 살갑게도 들어앉았다. 번듯한 벽돌집 한 채 없지만, 옹색하지 않다. 제각각인 집들이 잘도 조화를 이뤘다. 골목이라고는 한 사람이 걷기 좋은 비탈길이 전부다. 비탈을 따라 굽이굽이 이어진 골목은 보기에도 예쁘고, 걷는 재미도 쏠쏠하다. 언덕 아래 있는 마을이다 보니, 해안도로를 따라 차를 몰다 보면 모른 채 지나치게 된다. 위치를 알고 일부러 찾아야 눈에 띄는 곳이다. 일단 마을이 눈에 들어오면 누구라도 차에서 내려 한번쯤 골목을 걸어보게 된다. 소박해서 더 곱다. 돌이 많아 ‘석리’라고 불리는 이 마을은 경북 영덕에 있는 바닷가 마을이다. 40여가구가 텃밭을 일구고, 돌미역과 돌김을 따서 먹고산다.

요즘 이 마을이 신문과 방송에 자주 등장한다. 한국수력원자력이 새 원자력발전소 터를 선정하는데 경북 영덕군이 이 마을을 포함시켜 유치 신청을 냈기 때문이다. 경북 울진군, 강원도 삼척시와 함께 유치 경쟁을 벌이고 있다. 지난 주말, 대지진으로 일본 원자력발전소가 위태로운 가운데 새로 원전 유치신청을 한 지역 상황을 취재하러 석리를 찾았다. 여전히 고운 마을은 평화로웠다. 밭을 매고 있는 할머니에게 원전 얘기를 꺼냈다. “그게 위험하다고는 하는데, 내가 살면 여기서 얼마나 더 살겠어. 보상받아 아들 물려주면 좋잖아” 했다. 대도시에서 이 마을로 이사 왔다는 민박집 주인은 “이 지역 주민들이 다들 적극적으로 찬성하니까, 외지 사람이 무슨 의견을 낼 수 있겠느냐”고 말을 아꼈다. “일본 때문에 원전 계획이 무산될까봐 오히려 걱정”이라는 주민도 있었다.

원전 유치신청을 한 울진이나 영덕의 바닷가 마을 주민 대부분이 70~80대 어르신들이다. 유치 찬반을 묻는 여론조사에서는 90% 이상의 압도적인 찬성 의견이 나왔다. 그 결과에는 정부 보상을 받아 자식들에게 물려주려는 마음이 깔려 있다. ‘정부 정책에는 따르는 게 순리’라는 순응논리도 곁들여졌다. 인구는 줄고, 변변한 일자리가 없는 지역의 젊은층은 원전을 ‘희망’으로 여긴다. 반드시 유치하겠다는 지방자치단체와 의회의 각오는 비장하다.

사람들이 원전을 반기는 이유는 분명하다. 금전적 보상과 지역 발전이라는 ‘당근’은 당장 내 호주머니에 들어올 듯 가깝다. 핵발전이 가져올 환경문제는 찜찜하지만, 먼 얘기다. 전기 소비는 줄일 의사가 없는 도시 사람들이 환경문제를 들먹이며 원전을 반대하는 모순은 차라리 부끄럽다.

그래도 더 이상 원전은 환영받을 수 없다. 에너지 수요를 쫓아 원전을 더 지어 공급을 늘리는 에너지정책은 지속가능하지 않다. 더구나 원전의 폐해는 상상이 아니라 현실로 눈앞에 와 있다. 스위스, 미국, 중국, 영국이 원전정책을 다시 살피고 있다. 일본이 큰 희생을 치르고, 인류가 더 큰 재앙을 예방하도록 교훈을 주고 있는 셈이다.

현재 원전 21기를 가동중인 한국은 2030년까지 원전 19기를 새로 지을 계획이다. 앞다퉈 원자력발전소에 삶터를 내주려는 사람들이 있으니 계획은 현실이 될 가능성이 크다. 저마다 셈법에 따라 원전을 끌어안겠다는 개인을 탓할 수는 없다. 그러나 국가의 셈법 속에는 우리의 ‘미래’가 들어 있어야 한다. 좀더 멀리 보면, 원전문제의 해답은 또렷하게 나와 있다. 50년 뒤, 석리를 그려보자. 설계수명을 다해 폐기된 원전과 여전히 고운 바닷가 마을, 어느 쪽을 택할 것인가. hop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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