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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한겨레 프리즘] 농업기자들의 반성 / 김현대

등록 2011-03-27 19:59

김현대  선임기자
김현대 선임기자
김현대
지역부 선임기자
지난해 1월 힐러리 벤 영국 환경식품농촌부 장관이 ‘식품 2030’을 발표했다. 2030년 이후까지 식량안보를 유지하기 위한 전략을 담았다. 2008년 최악의 국제곡물파동을 겪은 벤 장관은 “우리에게 필요한 식량이 충분하다는 생각이 여지없이 빗나갔다”고, 영국 사상 두번째 식품전략을 수립하게 된 배경을 설명했다. 영국 정부에서 첫 식품전략을 내놓은 것은 60년 전이었다. 2차대전 때 식량수입에 어려움을 겪었던 클레멘트 애틀리 정부가 전후에 식품전략을 발표했다.

‘애틀리 플랜’의 성과로 영국은 지난 수십년 동안 식량 걱정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종전처럼 생산하고 소비하는 방식은 급기야 한계에 부닥쳤다. 더는 지속가능하지도 않다는 사실이 분명해지고 있다. 벤 장관은, 지구상의 10억 인구가 굶주리는 한편 10억 인구가 비만으로 고생하는 아이러니가 벌어지고 있고, 농산물 생산이 지구에 감당하기 힘든 부담을 주고 지나치게 많은 석유와 물에 의존하고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실제로 유엔 식량농업기구는 2006년의 한 보고서에서 전세계 온실가스의 무려 18%가 축산업에서 배출된다고 지적했다. 자동차·항공기·선박 등 교통분야의 온실가스 배출량 13.5%를 훨씬 능가하는 것이다. 이산화탄소 배출로만 따지면 축산업 비중이 전체의 9%에 그치지만, 지구온난화에 훨씬 더 해로운 영향을 끼치는 아산화질소, 메탄가스, 암모니아가스를 많이 배출하기 때문이다.

아산화질소는 온실효과가 이산화탄소보다 296배, 메탄가스는 23배 강하다. 땅의 이용에서도 지금 방식의 축산업은 파괴적이다. 얼음이 덮이지 않은 전세계 표면의 30%가 가축 목초지로 개발됐고, 전체 경작면적의 33%가 동물사료 생산에 이용되고 있다. 1㎏의 육류를 생산하는 데는 1만8326ℓ의 물이 들어가는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우리 정부는 지난 24일 구제역 대재앙을 결산하는 종합대책을 발표했다. ‘가축질병 방역체계 개선 및 축산업 선진화 방안’이라는 긴 제목이었다. 하지만 근본대책을 마련한다는 호언장담과는 큰 괴리가 있었다. 방역체계를 갖추는 데만 초점을 맞춘 반쪽짜리 대책에 그쳤다.

환경과 지역에 엄청난 과부하를 주는 밀집사육을 제한하지도 않았고, 안전한 먹거리의 필수조건인 동물복지는 아예 언급도 하지 않았다. 20년 뒤를 내다보아 소비자들의 식품안전 요구를 반영하고 축산업 구조를 전면적으로 쇄신하려는 의지는 찾아볼 수 없었다.

아마도 이 정도가 우리 농업정책의 현주소이고 한계일 것이다. 지금 정부는 출범 직후 쇠고기 촛불의 홍역을 치렀고, 레임덕 반환점을 지나면서 구제역 재앙을 겪고 있다. 하지만 사소하게 여긴 농업 쪽에서 벌어진 일이다 보니, 깊이있게 성찰하기보다는 시급히 상황을 반전시키려는 조급함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것 같다. 석유 낭비와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고, 생산과 소비 전 과정의 식품안전을 철저히 보장하는 데 초점을 맞춘 농업과 식품정책의 큰 그림은 나오지 않고 있다. 2001년 구제역을 치른 뒤 환경식품농촌부로 정부 조직까지 바꾼 영국의 뼈저린 성찰에서 우리는 아무것도 배우지 못했다.

지난 9일 농업을 취재하는 언론사 기자 20여명이 한국농업기자포럼을 발족했다. 기자들은 “한국 농업이 이 지경이 된 데는 기자들 잘못도 크다”는 자기반성에서 출발하자고 했다. 실제로 농업분야에서 ‘지속가능한’ 취재활동을 벌이는 일간신문과 방송사 기자는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다. 그들의 첫 포럼 주제는 ‘구제역 이후의 지속가능한 한국 축산’이었다. 정부의 대책은 포럼의 기대치에도 한참 못미쳤다. koala5@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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