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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아침햇발] 석패율 유감 / 박병수

등록 2011-03-28 22:04

박병수  모바일 에디터
박병수 모바일 에디터
석패율이 처음 소개된 것은 2000년 초 여야 선거법 개정 협상 때다. 당시 집권당이던 국민회의가 “지역구에서 아깝게 낙선한 후보를 비례대표 의원으로 당선시키면 여야 모두 취약지역에서 당선자를 낼 수 있다”며 들고 나온 것이다. 박상천 당시 원내총무가 석패율이 망국적 지역구도를 치유할 방안이라며, 그렇지 않아도 검은 얼굴이 벌겋게 상기되도록 열변을 토하던 모습은 아직도 눈에 선하다. 그러나 관철하진 못했다. 한나라당이 “영남 공략을 위한 술수”라며 꿈쩍도 안 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사라진 석패율이 최근 다시 거론되고 있다. 명분도 그때와 같다. 지역주의 완화다. 11년 전과 달라진 점이 있다면 선관위가 앞장섰다는 점 정도다. 그런데 이번에는 관철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집권당이 된 한나라당이 적극적이고, 민주당도 부정적이지 않다고 하니 말이다.

우리나라 지역주의는 독특하다. 외국에서는 지역주의 세력이 분리독립이나 자치를 주장하는 경우가 많다. 스페인의 바스크나 카탈루냐, 영국의 북아일랜드를 생각해 보라. 그러나 우리나라는 관료적 중앙집권 체제가 완성된 조선조 이후 지역분리 운동의 경험이 없다. 그런데도 왜 지역주의가 문제이고 지역정서는 망국병이 됐을까?

선거는 다양한 사회세력의 이해관계가 충돌하고 조정되는 합법적 무대이다. 정당은 이런 이해관계를 동원하고 조직해 전국적인 갈등구조를 형성하는 구실을 한다. 그런데 생각해 보자. 우리나라의 유력 정당이 지역구도 이외에 다른 갈등을 동원할 만한 정치적 역량이나 상상력을 보여준 적이 있나?

지역주의가 본격적으로 문제가 된 것은 1987년 민주화 이후다. 지역주의를 그 이전으로 소급하는 견해도 있지만, 적어도 그때는 대립이 그렇게 첨예하지 않았다. 당시 유권자들의 핵심 분절점은 오히려 민주-반민주 구도였다. 한번 기억을 더듬어 보자. 87년 이전 야권의 핵심 선거구호는 독재 타도 아니었던가? 그리고 그 호소력이 영남이라고 다르고 호남이라고 달랐는가?

87년 직선제 개헌 이후는 어떤가? 민주-반민주 구도의 정치적 동원력은 소진되었다. 그런데 정치권이 이를 대체할 정치적 갈등구조를 조직해냈는가? 90년대 말 이후 많은 이를 절망에 빠뜨린 신자유주의의 대안을 내놓은 유력 정당이 있는가? 글쎄, 선뜻 고개를 끄덕이기 어렵다. 그렇다면 남는 건 무엇일까? 유권자가 여야간 차별성을 크게 느끼지 못한다면 말이다. 팔은 안으로 굽는다 하니, 지역주의가 손쉬운 정치적 동원 대상이 되는 것은 정해진 순서 아닐까? 현실이 이런데도 석패율이 지역갈등 해소에 도움이 될까?

지난해 6월 지방선거의 전국적 핵심 쟁점을 꼽으라면 단연 무상급식과 4대강 사업을 들 수 있다. 그러나 선관위는 당시 시민사회가 이와 관련해 펼침막을 걸거나 서명운동, 집회를 하는 것을 모두 선거법 위반으로 단속했다. 선거법상 금지된 ‘선거에 영향을 미치게 하기 위해 정당·후보자를 지지·반대하는 행동’이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선거에서 정책 대안이 활발하게 경쟁할 수 없다면 그런 선거가 무슨 소용인가? 정책 대안이 억압되면 유권자의 선택 기준이 지역 연고 같은 비합리적인 것으로 환원되는 것은 당연하다. 선관위가 지역구도 해소에 기여하고 싶다면 “여야 유력인사들의 구제책 아니냐”는 의심을 사는 석패율보다는 유권자들의 활발한 정책선거 참여를 보장하는 법개정안을 내놓는 게 우선 아닐까?

선거제도에 손을 댄다고 하더라도, 굳이 대표성을 왜곡하는 석패율을 도입할 이유가 있을까? 2008년 4월 총선에서 한나라당은 영남에서 45.8%를 득표했지만, 68석 중 46석을 얻었다. 민주당은 호남에서 65.3% 득표로 30석 가운데 25석을 차지했다. 득표율 이상의 의석을 얻었다. 대표성 원리에 충실한 비례대표제만 전면 도입해도 특정 정당의 특정 지역 독식은 완화된다.


편법은 편법을 낳고 미봉은 터지기 마련이다. 더뎌 보여도 정공법이 해법이 아닐까?

박병수 모바일 에디터su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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