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대호 연세대 철학과 교수
일본 후쿠시마에서 원전 사고가 일어난 지 한 달이 지났다. 독일에 머물면서 나는 이 사건에 대한 독일 사회의 반응을 잘 지켜볼 수 있었다.
3월11일의 사건을 계기로 독일의 에너지 정책은 새로운 전기를 맞을 전망이다. 1998년부터 2005년까지 집권했던 사민당-녹색당 정부는 17기의 원자력발전소 가동을 2018년까지 전면 중단할 예정이었지만, 새로 집권한 기민당-자민당 정부는 지난해 10월 계획을 수정해서 원전 사용 기간을 12년 더 연장하기로 결의한 바 있다. 이 결정은 이제 철회가 불가피해졌다. 원전 사고 직후 앙겔라 메르켈 총리는 석 달 동안 독일 전역의 원전을 점검해서 안전성에 문제가 있는 발전소는 폐쇄하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정부의 조처가 충분치 않다고 반박하면서 노쇠한 원자로의 사용 중지와 원자력 이용에 대한 전면적 재검토를 요구했고, 2015년께 원자력 에너지 사용의 전면 중단이 가능하다는 분석도 내놨다. 또 주말마다 수만명의 시민들이 여러 도시에서 원전 반대 시위에 참여했다. 지난달 27일 치러진 라인란트팔츠와 바덴뷔르템베르크 주의회 선거는 그 절정이었다. 원전 반대에 앞장서온 녹색당은 두 주에서 각각 15.4%와 24.2%의 득표율을 기록하면서 2006년에 비해 각각 두 배와 세 배 이상의 지지를 얻었다. 독일 최초로 녹색당 소속 주지사가 탄생했고, 녹색당이 주도하거나 참여하는 새 주정부는 원자력 사용 중지와 대체에너지 개발 등을 정책 현안으로 내걸고 있다.
이런 반응을 ‘독일인의 불안증’이라며 넘겨버리는 사람이 없지 않지만, 여론의 대세를 바꾸지는 못할 듯하다. 영국의 산업혁명, 프랑스의 시민혁명에 이어 제3의 혁명, 독일의 녹색혁명이 시작된 것 같다.
독일 사회의 이런 ‘과민반응’은 우리나라 사회의 ‘불감증’과 뚜렷이 대비된다. 이웃나라의 원전 사고를 대하는 한국 언론과 정부의 태도는 먼 산 불구경하는 것 같다. 사고 직후 보도의 대부분은 “편서풍이 부니 안심하라”는 정도였고, 한반도에 미칠 영향이 가시화되자 당황해서 허둥대는 기색이다. 시민들 사이에서도 진지한 문제의식을 찾아보기 힘들다. 2007년 미국산 쇠고기 수입 결정 때 보였던 태도와 하늘과 땅 차이다. 전체 국민의 건강과 후세대의 안전에 미칠 영향을 따져볼 때 미국산 쇠고기 수입은 큰 문제여도 좁은 땅덩어리에 현재 21기나 가동중인 원자력발전소는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걸까?
정부나 전문가들은 우리나라 원전은 자연재해의 위험으로부터 안전하다고 말한다. 지진이나 지진해일(쓰나미) 위험은 독일에도 없다. 그러나 원전 반대자들은 아무리 원전 시설의 안전을 도모해도 비행기 추락이나 테러 공격으로 발생할 위험을 없앨 수는 없다는 주장을 폈고, 독일 사회는 그런 문제제기를 정당한 것으로 받아들였다. 놀랍게도 우리나라에는 북한의 공격이나 전쟁 위험을 걱정하는 사람은 많아도 이를 원전 사고의 위험과 결부시키는 사람은 거의 없다. 북한의 핵공격이 아니더라도, 우리나라는 이미 불만 붙이면 터질 핵폭탄이 아닌가? 북한의 재래식 무기에 의해서건 낙후한 우리 공군기의 추락 때문이건 남한 지역 곳곳에 배치된 원전은 언제나 폭발할 수 있다. 전쟁 위험에 대한 걱정이 근거 있는 것이라면, 원전 사고에 의해 한반도가 폐허로 바뀌는 상황을 우려하는 것도 똑같이 근거 있는 일이다.
원자력 사용의 불가피성을 운운하기에 앞서 원전에서 벗어나려는 노력이 없다는 사실부터 직시하자. 독일 사회가 자신 있게 원전 탈피 정책을 내세울 수 있는 것은 지난 30년 동안 대체에너지 개발에 기울인 노력의 결실이다. 최근 공개된 ‘퓨(Pew) 환경 그룹’의 자료에 따르면, 주요 20개국(G20) 가운데 우리나라의 대체에너지 개발 투자는 멕시코·터키·아르헨티나에 이어 17번째 자리에 있다. 무엇이 우리의 발목을 원자력의 족쇄에 묶고 있는지 성찰과 숙고가 절실한 시점이다.
조대호 연세대 철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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