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명섭 전남 영광고 교사
꿈 많은 청춘들, 나라의 미래를 짊어지고 가야 할 대학생들이 죽음으로 내몰리고 있다. 카이스트 학생들의 자살만도 아니고, 남의 나라 이야기도 아니다. 어느 나라든 대학생들이 꿈과 희망을 잃고 자살이라는 극단적 선택을 한다는 사실은 사회적 비극이다. 그런 사회는 결코 정상적인 사회도, 공정한 사회도 아니다. 해마다 자살하는 대학생이 300명에 이른다고 하니 이게 정상적인 사회라 할 수 있겠는가. 한국의 사회현실이 얼마나 절망스럽고 미래의 삶에서 희망을 찾을 길이 그다지도 없었단 말인가. 스스로 목숨을 버린다는 것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극단적인 행위지만 이들의 죽음을 보는 마음은 착잡할 뿐이다.
대학생 자살의 중심에는 극심한 생활고와 살인적인 등록금, 바늘구멍의 취업난이 뿌리를 틀고 있다. 꽃도 피기 전에 생명을 잃는다는 것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꽃을 피우도록 보살펴주지 못한 기성세대와 그 사회의 문제다. 혹자는 절제력과 의지력이 약한 학생 개인들의 극단적인 잘못이라고 나무랄 수도 있겠으나, 그들이 인생을 포기하며 죽음의 길을 택한 데는 기성세대의 무책임, 한국 사회의 뿌리 깊은 불평등 구조 탓이 더 크다. 청춘이 꿈꾸는 것을 허용하지 못하는 한국 사회의 비정함, 젊은이들의 죽음을 애써 외면하는 사회 풍토, 대학 서열체제하에서 자본과 학벌만을 좇으며 가르치는 일에는 뒷전인 대학사회의 왜곡된 현실 등이 젊은 대학생들을 죽음으로 내몰고 있는 것은 아닌지.
그래서 젊은 대학생들을 이토록 참담하고 고통스런 처지로 내모는 한국 사회에 분노가 치밀어오른다. 분노와 한숨, 슬픔과 안타까움을 넘어 이들의 죽음을 바라보는 기성세대의 한 사람으로서 연대적 죄책감을 떨칠 수 없다.
유엔 청소년 보고서에 따르면, 대학생 자살자는 한국이 몇년째 세계 1위란다. 그리고 대학생의 88.6%가 등록금 마련에 고통을 당하고 있고, 60%는 자살 충동까지 느낀다고 하니 이는 기성세대의 책임이자 어두운 한국 사회의 반영이다.
대학생들이 등록금 마련을 위해 공부를 접고 밤늦게까지 저임금 알바의 돈벌이에 뛰어들게 하고 등록금 때문에 휴학한 여대생들에게 유흥업소 출입을 부추기는 기성세대의 얄팍한 장삿속, 졸업을 해도 일자리마저 얻기 어려운 뿌리 깊은 학벌 장벽과 인재 채용의 차별적 사회구조, 대출 등록금을 갚지 못해 대학생 신용불량자로 전락하게 만드는 한국 사회에서 과연 그들의 선택이 극단적인 행위라고, 학생 개인의 문제라고 어느 누가 돌팔매질을 할 수 있겠는가.
마이클 샌델은 <정의란 무엇인가>에서 “사회가 정의로운지 묻는 것은 우리가 소중히 여기는 것들, 곧 소득과 부, 의무와 권리, 권력과 기회, 공적과 영광 등을 어떻게 분배하는지 묻는 것”이라고 했지만, 부모의 경제적 부와 가난이 자식세대에게 대물림되고 대학 서열과 학벌구조하에서 학업과 취업의 기회균등마저 보장되지 않는 현실에서 젊은 꽃들이 어찌 꽃다운 꽃을 피울 수 있겠는가. 이명박 대통령도 출발과 과정에서 공평한 기회를 주는 기회균등의 공정한 사회를 강조했지만, 많은 대학생들이 책과 강의실을 떠나 돈벌이에 나서고 자살까지 하는 비극적 현실을 외면하는 한국 사회가 어찌 공정한 사회겠는가. 대학생들이 수업거부·삭발 투쟁을 벌여도 대통령마저 모르쇠하는 불신의 사회에서 어찌 공부에 전념하며 미래의 삶을 꿈꿀 수 있겠는가.
공교육 재정을 6조원만 늘려도 반값 등록금은 현실화될 수 있다고 한다. 범정부 차원의 ‘대학등록금 반값추진위원회’를 구성하여 젊은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안겨줘야 한다. 대학생들을 돈벌이의 현장에서 공부하는 캠퍼스로 되돌려보내야 한다. 젊은 대학생들에게 죽음을 권하는 사회가 더는 지속될 수 없도록 다함께 지혜를 모아야 한다.
박명섭 전남 영광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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