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창식 논설위원
일본 <요미우리신문> 독도 소송이란 게 있다. 이 신문은 2008년 7월 한-일 정상회담에서 후쿠다 야스오 총리가 독도를 ‘다케시마’로 표기하겠다고 하자 이명박 대통령이 ‘지금은 곤란하니 기다려달라’고 요구했다고 보도했다. 이것을 청와대는 오보라고 주장했고 요미우리는 맞는 보도라며 맞섰다. 이런 가운데 우리 시민들이 진실을 규명하고자 소송을 냈다가 올해 1월 대법원에서 청구를 기각당했다. 발언의 진위를 새삼스레 따져보자는 건 아니다. 다만 펄쩍뛰고도 남을 일인데도 청와대가 일본 언론을 상대로 강력한 법적 조처를 하지 않아 내내 의아스러웠다는 점은 밝히고 싶다.
얼마 전 일본의 교과서 검정 결과로 독도 문제가 다시 불거졌다. 김성환 외교통상부 장관은 무토 마사토시 주한 일본대사를 불러 “독도는 일본의 식민지 침탈 과정에서 강점됐던 우리 영토라는 점에서…”라고 항의했다. 독도가 단순한 영유권 분쟁 대상이 아니라, 제국주의 침략과 직결된 역사 문제임을 나름대로 짚은 것이다. 외교부 대변인 성명도 “검정을 통과한 교과서가 그릇된 역사관을 합리화하고 미화하는 데 대해” 유감을 밝혔다.
사실 외교부의 독도 대응 메시지는 노무현 대통령의 2006년 ‘한일관계 신독트린’에 터잡은 것이다. 일본이 교과서 문제 등을 거듭 일으키자 노 대통령은 특별연설을 통해 일본 주장을 단호하게 논파했다. “독도는 일본의 한반도 침탈 과정에서 가장 먼저 병탄된 역사의 땅입니다. 러일전쟁은 제국주의 일본이 한국에 대한 지배권을 확보하기 위해 일으킨 한반도 침략전쟁입니다. 일본은 러일전쟁을 빌미로 우리 땅에 군대를 상륙시켜 한반도를 점령했습니다 … 일본은 이런 와중에 독도를 자국 영토로 편입하고 망루와 전선을 가설하여 전쟁에 이용했던 것입니다 … 지금 일본이 독도에 대한 권리를 주장하는 것은 제국주의 침략전쟁에 의한 점령지 권리, 나아가서는 과거 식민지 영토권을 주장하는 것입니다.”
일본은 독도 영유권을 다각도로 맹렬하게 주장하고 있다. 독도를 한국이 실효적으로 지배하고 있으니 대신 논리와 홍보 싸움에서 앞서가 보자는 전략이다.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방법이 있다. 일본의 주장이 식민지 영토권 부활론 성격임을 우리가 정면으로 치고 나가는 것이다. 제국주의 시절 강제로 편입한 영토를 지금도 유지하겠다는 발상은 국제사회에서 결코 용납될 수 없다. 가령 독일은 2차대전 이전에 점유했던 오데르-나이세 선 동쪽 영토에 관해 아무런 권리가 없다는 견해를, 독일 총리와 외교부 장관, 의회 결의 등을 통해 거듭 천명하고 있다. 노 대통령의 ‘한일관계 신독트린’이 우리 외교사에 명연설로 남은 것은, 독도를 분쟁지역화하려는 일본의 의도에 말려들지 않으면서 도발에 쐐기를 박을 방법을 담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명박 대통령은 지난 1일 기자회견에서 “천지개벽을 두 번 하더라도 이것(독도)은 우리 땅”이라며 “실효적 지배를 위해 해야 할 구체적 사업을… 계속해 나갈 것”이라고 실무적 방침을 달랑 언급하는 데 그쳤다. 1904년 러일전쟁과 일본군의 상륙, 1905년 을사늑약에 의한 대한제국 외교권 박탈, 시마네현 고시에 의한 독도 일본영토 편입 등 통분을 금할 수 없는 역사에 대해 그는 한마디도 말하지 않았다. 실용주의적으로 다룰 일이 따로 있고 역사의 연원을 엄중하게 추궁할 일이 따로 있는데도 말이다.
당시 기자회견은 내외신 언론기관이 총출동한 만큼 일본의 역사 퇴행을 통렬하게 논박하기에 아주 좋은 기회였다. 그런데 역사를 학습하지 않았기 때문인가, 아니면 생각이 달라서인가. 혹시 생각이 다르다면 김성환 외교부 장관이 언급하는 역사적 맥락은 대한민국의 공식 견해가 아니라는 말인가. 대통령의 그날 발언은 참으로 안이하고 빈약했다.
이명박 정부 들어 인권과 민주주의, 그밖의 여러 사회제도가 후퇴했다. 거기에 우리 영토와 역사 문제에 대한 인식마저 뒷걸음치고 있으니 안타까운 노릇이다. cspcsp@hani.co.kr
박창식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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