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현호 사회부 선임기자
한상률 전 국세청장에 대한 검찰의 수사 결과 발표는 금요일인 지난 15일에 있었다. 느지막이 오후 2시 반부터였다. 발표할 내용이 2~3일 전에 이미 결정됐다는데도 그랬다. 장소도 기자회견장이 아닌, 서울중앙지검 6층의 3차장검사 방이었다. 어지간한 일이면 몇 쪽씩 나오는 보도자료도 없었고, 카메라도 일절 사절이었다. 기사를 크게 취급하지 말아달라는 노골적인 의사표시라고 봐야 한다.
그런 의도였다면 얼추 뜻대로 됐다. 신문과 방송에선 검찰의 수사가 미흡하다는 보도가 있었지만 반향은 작았다. 야당과 시민단체의 비판도 이어지지 않았다. 정당의 공식회의도 없고 시민단체도 쉬는 주말 분위기 탓이다. 주 5일 근무제로 이제 주말은 뉴스와 쟁점의 무덤이 됐다. 그렇게 주말을 보낸 지금, 한상률 사건은 까맣게 잊히고 묻혔다.
이런 일이 한둘이 아니기에 우연이라고 하기도 어렵다. 파행과 비극으로 끝난 박연차 게이트 수사 결과 발표는 2009년 6월12일 금요일 오후 3시였다. 이명박 대통령의 사돈 기업인 효성그룹 2세들의 국외 부동산 취득 의혹에 대한 기소는 2010년 7월16일 금요일에 발표됐다. 효성 비자금 수사 결과는 추석 연휴가 시작되기 바로 전날인 2009년 10월1일 오후 늦게 통보됐다. 흉내라도 낸 듯, 정부 합동조사단의 상하이 스캔들 조사 결과 발표도 지난 3월25일 금요일이었다. 껄끄러운 사건을 금요일에 털어버리는 것은 이제 상식이 된 듯하다.
잘한 일을 자랑하고 허물을 감추는 것은 인지상정이겠다. 파장을 미리 가늠해 조율하는 능력도 ‘정무적 감각’일 수 있다. 하지만 그 일이 권력에 관계된 것이라면 얘기가 다르다.
한상률은 뇌관이다. 개인 비리 혐의도 작지 않지만, 그가 관련됐다는 의혹의 폭발력이 매우 크다. 대통령 형제와 정권이 의혹 대상인 탓이다.
검찰은 폭발물처리반처럼 조심스러웠다. 먼저 했어야 할 계좌추적은 보름 넘게 미적댔고, 그나마 꼭 해야 할 곳이 빠졌다. 수사 원칙과는 거리가 멀다. 자칫 주변의 인화물질로 번질 것을 걱정해 ‘김을 빼려’ 그런 게 아니냐는 의심을 살 만하다. 일선 지휘부가 먼지털기식 수사를 반대했다지만, ‘피디수첩’ 수사 때는 불문곡직하고 피디들의 전자우편(이메일)부터 통째로 압수수색했던 게 검찰이다. 연임 로비의 대상인 이상득 의원에 대한 직접조사는 이번에도 없었다. 그러고선 무혐의 결론만 내놓았다. 모양을 갖추려다 자칫 더 큰 환부와 맞닥뜨리는 민망한 상황을 피하려 한 것은 아닐까.
그렇게 나온 수사 결과는 당사자 모두에게 그리 불만스럽지 않을 성싶다. 그림을 뇌물로 받았다는 전군표 전 국세청장 부부와 돈 심부름꾼이었다는 국세청 직원은 입건조차 되지 않았고, 거액의 자문료를 준 대기업들도 처벌 대상에서 빠졌다. 한씨의 혐의도 유죄를 장담하기 어렵다고 한다. 진술에 의존하는데다 빈 구멍이 많은 탓이다. 그리되면 큰 상처를 입는 사람은 없다. 결과적으로 성공적인 뇌관 해체다. 그 과정 하나하나에 작위 또는 부작위, 속도와 힘 조절 따위 ‘배려’는 없었을까.
검찰은 법을 집행하는 기관이다. 원칙은 그렇게 엄정한데, 외부에 비친 모습은 전혀 다르다. 이런저런 눈치보기와 정치적 고려를 서슴지 않는 기관이다. 그런 변칙을 아무렇지 않게 여기는 것은 독점적 권력에 젖은 탓이겠다. 사법개혁은 이를 바꾸자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에도 검찰은 집단이익을 지키려는 ‘정치’에 열심이다. 어느 검사장은 어느 언론사를 맡아 밥과 술을 산다는 식이다. 국회의원들에겐 은근한 압박도 가한다고 한다. 병이 참 깊다. 여현호 사회부 선임기자
yeop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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