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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이종석 칼럼] ‘좌파’, 그 호명이 불편한 이유 / 이종석

등록 2011-04-25 20:02

이종석 전 통일부 장관
이종석 전 통일부 장관
4·27 재보궐선거를 앞두고 갑자기 ‘강남좌파’ 논란이 불거졌다. 어느 극우언론에 ‘분당우파는 강남좌파에게 속지 말아야 한다’는 요지의 칼럼이 실린 것을 계기로 여기저기서 ‘좌파’ ‘우파’ 얘기가 쏟아져 나왔다. 이 와중에 ‘강남좌파’를 자임하는 이도 있고, 일부 진보학자들은 ‘좌파’라는 용어를 한국에서 실체화된 세력의 공식 용어처럼 거리낌없이 사용한다. 나름대로 판단을 해서 하는 행동이겠지만 나는 ‘좌파’라는 말이 영 불편하다.

반공을 국시로 삼아온 우리 사회에서 상대방을 ‘좌파’로 호명하는 것은 ‘배제되어야 할 대상’ 혹은 ‘척결 대상’이라는 이미지를 동반하는 일종의 주홍글씨였다. 그러다 보니 보수인사들도 진보세력을 ‘좌파’로 몰아세우는 것을 자제했다. 분단 역사 속에서 이 용어가 골육상쟁의 비극과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그러했을 것이다. 그동안 극우세력을 제외하고는 대체로 ‘좌파’ ‘우파’보다는 ‘진보’ ‘보수’라는 용어를 사용했다.

그런데 1년간 미국에서 연구생활을 마치고 2009년 한국에 돌아왔을 때, 보수인사들 사이에서 진보세력을 공공연히 ‘좌파’라고 부르는 것을 보고 놀랐다. 이명박 정부 들어서서 전사회적으로 일어난 시대적 퇴행 현상의 한 단면을 보는 듯했다. 그들의 ‘좌파’ 호명은 기득권 세력이 상대적으로 진보적인 세력에게 다시는 정권을 내줄 수 없다며 반대세력을 영원한 소수자로 전락시키고 싶어서 내뱉은 강박관념의 산물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학자들은 자신의 보수적 정체성을 과시하거나 혹은 기득권 세력에게 자신도 한편이라는 눈도장을 찍고 싶어 하는 편승의식에서 ‘좌파’를 공공연히 입에 달고 다니는 것 같았다.

18년 전 나는 북한 유일체제의 비효율성과 비민주성을 역사적·이론적으로 밝히고 주체사상이 어떻게 인민을 기계적인 피동체로 만들었는가를 규명한 박사논문을 제출하였다. 이후 같은 맥락에서 숱한 논문과 책을 썼다. 그러나 극우세력에게 나는 여전히 ‘친북좌파’이며 심지어 ‘종북좌파’이다. 이유는 한 가지인 것 같다. 그들이 볼 때 대북 포용정책을 주장하고 대화와 협상을 통해 남북문제를 풀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건 ‘친북좌파’에 해당한다. 인질범의 손에서 인질을 구하기 위해 인질이 다칠 수 있는 기동타격대식 일망타진을 시도하기보다는 인질범을 설득해보자는 사람들에게 ‘친인질범파’라고 딱지를 붙이는 것이나 다름없는 이 야만이 아직도 ‘좌파’라는 호명에서 횡행하고 있다.

나는 아직도 ‘좌파’라는 말이 대한민국에서 그 뜻이 정당하게 인식되고 통용되는 시민권을 획득하지 못했다고 생각한다. 이념의 시대로 상징되는 냉전이 해체된 지 20년이 지났지만, 그 용어는 여전히 상식과 논리에서 열등감에 빠져 있는 기득권 세력이 정치적 반대세력을 제압할 목적으로 국민을 현혹하기 위해 사용하는 맛좋은 먹잇감의 처지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좌파로부터 나라를 지켜달라”는 여당 후보의 색깔론이 ‘강남좌파’ ‘분당우파’ 논란의 종결자가 되는 현실이 이를 잘 보여준다.

나의 애국심을 확신하듯이 반대의견을 지닌 자들의 조국애를 의심치 않고, ‘나와 다른 의견’과 내 의견이 공존하며 ‘다름’과의 협력적 경쟁이 우리 공동체를 발전시켜 나간다고 믿는 태도가 중요하건만 우리 사회의 기득권 세력에게 이를 기대하는 것은 요원해 보인다.

국민은 합리성을 추구하지만, 기득권 세력이 국민과 공유하기를 원하는 ‘좌파’의 이미지는 사회혼란 세력이며 집권불가의 자질과 국가관을 가진 집단이다. 지금 그들이 보일 수 있는 알량한 아량은 ‘좌파’도 국가보안법을 준수하는 한 이 사회에서 영원한 소수파로서 살아갈 수 있다는 정도다. 전쟁으로까지 비화한 이념갈등의 역사가 ‘좌파’라는 용어에 관한 한 아직도 국민의 이성적 판단을 어렵게 하고 있다. 그래서 ‘좌’와 ‘우’의 이념이 자유롭게 경쟁하고 소통하며 ‘좌파’라는 호명이 국민의 마음속에서 정당한 시민권을 획득하는 사회를 실현하기 위해서 아직은 우리가 할 일이 너무 많다. 이종석 전 통일부 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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