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광희 변호사·‘영화사 봄’ 대표
예전에 기무사 수송대가 있던 공간에 자리잡은 서울 용산구 서계동 ‘백성희장민호극장’에서 이달 초순 <불의 절벽 2>라는 공연이 있었다. 달리 방법이 없어 ‘공연’이라는 표현을 하기는 했지만, 어떤 장르로 규정하기 어려운 <불의 절벽 2>를 과연 ‘공연’이라고 부르는 것이 맞는지는 모르겠다. 연출자는 아방가르드 정신으로 예술의 개념에 대해서 문제를 제기하는 작업들로 알려진 미술가 임민욱씨이고, 실제 고문 피해자인 김태룡씨와 유려하고 따뜻한 글을 쓰는 정신과 의사 정혜신씨가 무대에 올랐다.
공연이 시작되기 전에 주최 쪽은 윤동주 시인의 ‘서시’가 인쇄된 종이를 관객들에게 나누어주었다. 자세히 보면 요즘 보기 드물게 손으로 조판한 인쇄물이다. 곧 알게 되지만, 그것은 감옥생활 중에 조판을 배운 김태룡씨가 직접 조판하여 인쇄한 것이다.
공연 후반부에 이 극장의 독특한 공간을 활용한 퍼포먼스와 영상이 이어지기는 했지만, 그것을 제외하면 공연 내용은 단순한 편이다. 무대에 오른 고문 피해자와 의사가 고문과 그로 인해 파괴된 그의 삶 그리고 지금 살아가는 모습에 대하여 담담히 이야기를 주고받는다. 그런데 다큐멘터리라고 하기도 뭐하고, 연극이라고 하기도 뭐한 이 ‘다큐연극’이 불러일으키는 공감은 놀랍다.
고문은 힘이 세다. ‘마녀라는 자백’도 받을 수 있는데 ‘간첩이라는 자백’을 받지 못할 이유가 없다. 자백에 뒤따르는 끔찍한 결과를 알면서도 인간의 신체적 약점은 그것을 피하지 못한다. 온 가족이 굴비처럼 엮인 채 잡혀가는 상황은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고문에 뒤이은 역겨운 재판 과정을 거쳐 김태룡씨의 아버지는 사형당하고 김태룡씨는 19년의 감옥생활 끝에 디지털시대에 쓸모가 없는 조판기술을 배워 출소한다. 그의 할아버지는 비극을 견디지 못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김태룡씨가 잡혀갈 때 갓난아이였던 아들은 성인이 되었고, 지금은 서울 어딘가의 나이트클럽에서 무명가수로 일한다. 김태룡씨가 감옥에 갇혀 있던 길고 긴 시간 동안 아들을 얼마나 그리워했을지는 짐작이 간다. 아들은 또한 어땠을까. 연출자는 지난 세월에 대하여 결코 아버지와 이야기하지 않는 아들의 노래를 나이트클럽에서 몰래 녹음해 와서 들려준다. 그 무심한 대중가요는 얼마나 슬펐던지. 그리고 김태룡씨가 감옥에서 아들을 생각하며 불렀다는 노래를 자리에서 일어나 직접 부를 때 울지 않는 관객은 없었다.
현실의 곳곳이 ‘불의 절벽’인 이 세상에서 어쩌면 우리는 극을 만들어내기 위해 그렇게 애쓸 필요가 없을지 모른다. 그저 고통받는 자들을 불러와 이야기를 듣기만 하면 그것이 극보다 더한 극이 된다. 물론 처참한 현실을 불러들이는 것이 ‘상처의 전시’가 되어서는 안 된다. 현명하게도 이 작업의 참여자들은 관객들에게 공감을 강요하지 않고, 그 고통에 스스로 동참하게 만들었다.
사실 이 공연을 통하여 가장 변화한 사람은 관객들이 아니라 김태룡씨 자신일 것이다. 그가 겪은 고통을 보상하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그에게 공감하는 관객들로 인해 그의 상처는 조금이나마 아물었으리라. <불의 절벽 2>는 극과 다큐의 경계를 허물고 각종 장르를 횡단하면서, 여전히 수많은 사람들이 낭떠러지에 서 있는 이 벌거벗은 시대에 ‘예술이 무엇을 할 수 있고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보여주었다. 만일 <불의 절벽 3>이 만들어진다면 이번에는 35m 크레인에 오른 진짜 노동자 김진숙의 이야기를 듣고 싶다.
조광희 변호사·‘영화사 봄’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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