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성인 홍익대 경제학과 교수
금융감독원이 난리다. 저축은행 감독 부실과 부패한 조직 문화에 대한 국민의 질타가 연일 계속되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의 표현처럼 “가히 조직 최대의 위기”다. 금감원이 반나절 만에 쇄신안을 발표했지만 휘몰아치는 광풍을 잠재우기에는 역부족이다.
‘홍수 날 때 쓰레기 버린다’고 이참에 기민하게 자신의 잇속을 차리려는 다른 기관들의 눈꼴사나운 행각도 엿보인다. 금융위원회 공무원들은 자신의 감독 실패를 떠넘기고, 한국은행은 금감원이 독식하고 있는 꿀단지를 나눌 기회만 엿보고, 금융권은 족쇄를 끊고 ‘내 멋대로 경영’에 시동을 걸 태세다. 그래서 조심해야 한다. 잘 작동하는 금융감독 체계는 반나절 만에 뚝딱 만들어낼 수 있는 패스트푸드가 아니다.
먼저 부차적인 논점부터 정리해 보자. 저축은행 부실은 저축은행 대주주, 금감원, 금융위, 예금보험공사, 해당 지역구의 정치인, 심지어 부실 저축은행의 일부 예금자에 이르기까지 많은 사람들이 함께 만들어낸 문제다. 따라서 저축은행 문제를 진정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이들 모두에 대한 ‘예외 없는 문제제기’가 있어야 한다. 장관은 봐주고, 공무원은 숨겨주고, 예금자는 전부 보호하고, 금감원만 때려잡는 것은 역설적으로 문제를 덮는 가장 손쉬운 방법일 뿐이다.
금융기관 감사를 둘러싼 논란도 마찬가지다. 이 자리는 신도 탐내는 꿀단지다. 꿀단지에 꿀을 계속 넣어둔 채 금감원 퇴직자만 그 자리에 못 가게 막는다고 무엇이 해결되겠는가. 금감원이 낙하산을 거둔 그 자리는 아마도 지금 열심히 금감원을 때리고 있는 다른 사람들이 차지할 것이다.
우리나라 금융감독이 총체적으로 실패한 근본 원인은 금융산업에 진입장벽을 설치해서 막대한 꿀단지를 만들어 놓고, 소수의 금융감독 조직이 이를 뜯어먹는 데 혈안이 되어 왔기 때문이다. 인허가권은 꿀단지의 매표소가 되고, 불필요한 금융규제는 금융기관을 옭아매는 거미줄이다. 임점검사란 종종 이 거미줄을 살펴서 꿀을 수확하는 행사였다.
그래서 금융감독 체계를 제대로 만들기 위해서는 대통령의 결단이 필요하다. 공무원의 집단이기주의를 견제하고, 금감원의 끈적끈적한 사익 추구를 떨쳐내고, 단맛에 길들여진 금융기관의 기득권 사수를 잠재워야 하기 때문이다. 특히 2008년 2월 이 정부 출범 초기에 있었던 금융분야 정부조직 개편이 잘못되었음을 자인해야 하기 때문에 이 정부가 존속하는 한 대통령이 아닌 그 누구도 감히 이 작업을 시작할 수 없다.
지난 4일 금감원을 찾은 이명박 대통령은 별도의 태스크포스가 금감원의 개혁을 논의할 것을 주문했다. 이에 금감원은 뼈를 깎는 자세로 쇄신할 것을 다짐했다. 필자는 진정 그렇게 되기를 바란다. 그러나 언제나처럼 개혁은 삼천포로 빠지고 공무원만이 기득권을 늘리는 잔치를 벌이지 않을까 염려한다. 아마 국민들도 이런 의구심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대통령과 금감원이 개혁 의지의 진정성을 국민에게 확신시키기 위해서는 몇 가지 어려운 결단이 필요하다.
첫째, 대통령은 이번 정부의 내각이나 청와대에서 근무하다가 금융기관의 회장·사장·이사·감사로 낙하산 타고 내려간 사람부터 다 사퇴시켜야 한다. 그러지 않고 금감원의 낙하산만 문제삼을 수 없다. 둘째, 금융개혁 태스크포스는 공무원의 꼭두각시로 처신하지 않았던 사람들로 구성하고, 이들이 2008년 정부조직 개편에 대한 평가를 포함한 성역 없는 금융감독 체계 개편안을 만들도록 해야 한다. 빵 부스러기에 관심이 많았던 사람들은 기득권과 성역을 뚫고 구조개혁 문제를 다룰 수 없다. 셋째, 금감원은 현재 하기 싫다고 미루고 있는 숙제 중 가장 어려운 과제, 이를테면 론스타의 비금융주력자 여부 조사를 끝내야 한다. 실현 가능성도 별로 없는 쇄신안을 쏟아내는 것보다 본연의 감독업무에 충실한 모습을 보이는 것이 더 어렵고 따라서 진정성을 더 많이 담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말이 아니다.
전성인 홍익대 경제학과 교수
전성인 홍익대 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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