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5.01.19 19:51
수정 : 2005.01.19 19:51
18일 사법개혁추진위원회가 출범했다. 지난 1년 동안 사법개혁위원회가 광범한 영역에 걸쳐 심도 있는 논의를 거듭한 끝에 채택한 여러 의제를 실행에 옮기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다. 사법이란 한 나라의 정의 시스템이다. 법과 정의의 세계는 국민소득 몇 달러와 같이 숫자로 판단할 수 없는 근본적인 무거움이 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지구상의 어느 나라에서나 사법현장에는 불평과 불신의 목소리가 일기 마련이다. 내 문제에 대해 타인이 내린 판단을 액면대로 수용하지 않는 것이 인간의 본성이기도 하다. 그러기에 존경보다 비난을 받은 것은 어쩌면 사법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업보인지도 모른다. 따라서 사법개혁의 핵심과제는 하나하나의 사건에 대한 당사자의 유감을 덮어버릴 수 있는 객관적인 제도를 확보하는 데 있다. 게다가 돌이킬 수 없는 국제화, 세계화의 길을 내딛고 있는 현실을 직시하여 법률가의 국제적 경쟁력을 높이는 제도를 구축해야 한다.
과거에도 여러 차례 사법 제도를 개혁하라는 요구가 일었고, 그때마다 나름대로 개선이 따랐다. 그러나 국민의 근본적인 신뢰를 얻기에는 부족하기 짝이 없었다. ‘사개추위’가 구체적인 실행계획을 세워나갈 수많은 의제 중에 특히 두 건의 의제에 대해서는 국민 처지에서 미리 방향을 구상해 보아야 할 것이다. 배심(또는 참심)제와 ‘로스쿨’ 문제다. 우리 사법제도의 근본적인 취약점은 두 가지로 압축될 수 있다. 첫째, 사법제도 운영에 전문 법관 이외의 국민이 참여할 여지가 전혀 없다는 것이다. 이른바 사법의 민주적 정당성이 지극히 취약한 것이다. 둘째, 사법서비스의 양과 질의 문제다. 이 문제는 사법시험으로 상징되는 법조인 양성 체제에 대한 재검토로 이어진다. 대안으로 등장한 것이 대학원 차원의 로스쿨이다.
배심제도는 민주사법의 정신에 가장 충실한 제도이다. 그러나 그만큼 사회적 비용이 높다. 원래 배심제도는 정적인 사회를 전제로 하여 구성원이 사법제도 운영에 직접 참여하는 이상을 구현한 것이다. 지극히 동적인 현대사회에는 배심재판은 축소될 수밖에 없다. 현재 세계 배심재판의 90%가 미국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실로 미국은 지구상에서 가장 예외적인 사법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그만큼 여유와 전통, 그리고 무엇보다도 국민의 참여정신이 확고하기 때문이다. 배심재판은 국민의 권리이자 의무다. 권리를 주장하는 사람은 참여할 의무도 각오해야만 한다. 지난해부터 대법원이 배심재판에 대해 유연한 태도를 보여준 것은 실로 바람직하다. 우리나라에도 반드시 필요한 제도다. 문제는 어떤 사건과 어느 범위에서 도입할 것인가, 국민의 참여의무와 함께 진지하게 논의해야 할 것이다.
미국식 로스쿨은 엘리트 교육을 지향한다. 대학에서 전공교육을 받은 사람을 상대로 법학을 교육함으로써 사회 전반에 걸친 법률문제에 실무적 도움을 주고 지적 체계를 구축하도록 교육한다. 세계를 흔드는 미국의 힘은 군사력, 경제력에만 바탕을 둔 것이 아니다. 국민의 절대적인 신뢰 위에 건설된 사법제도, 그리고 국정과 사적 부분 전반에 걸쳐 고루 퍼져 있는 로스쿨 출신들의 지적 역량에 크게 힘입은 것이다. 흔히 미국 로스쿨에서 실무교육을 강조하는 것으로 잘못 알려져 있다. 절대로 그렇지 아니하다. 오히려 정반대로 철저한 이론교육, 방법론 교육에 중점을 둔다. 다만 실제 판결을 중심으로 교육함으로써 추상적인 체계보다는 구체적인 답을 풀어내는 지혜를 연마한다. 로스쿨 교육은 비용이 많이 든다. 교육 단가도 높고 교수의 봉급도 고액이다. 경제력이 받쳐주지 않는 학생에게는 장학금과 대여금을 제공함으로써 기회의 평등을 보장한다. 미국 로스쿨 졸업생 70%가 연방과 주정부의 대여금으로 학자금을 충당한다는 통계가 있다. 충분히 참고하여야 할 것이다.
‘사개추위’의 책임은 무겁다. 국민의 책임도 마찬가지로 무겁다. 사법의 민주화와 국제 경쟁력 배양, 두 가지 과제를 달성하기 위해 두루 지혜를 모아야 할 것이다.
안경환 서울법대교수·샌타클래라로스쿨 방문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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