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승동 논설위원
<아사히신문>이 위키리크스로부터 입수해 지난 4일 공개한 미국의 일본 관련 비밀 외교전문들은 2009년 9월 일본 정권교체를 전후해 미국이 어떤 문제에 신경을 곤두세웠는지를 잘 보여준다. 미국은 후텐마 기지 이전 문제와 함께 하토야마 유키오 총리가 제창한 동아시아 공동체에 특히 민감하게 반응했다. 그해 10월7일 전문은 “하토야마가 그 구상을 주변 여러나라 수뇌들에게 계속 얘기하고 있다”는 걸 문제삼았다. 그달 중순 일본에 온 커트 캠벨 미 국무부 동아태 담당 차관보는 하토야마 총리가 베이징에 가서 “이제까지 일본은 미국에 너무 의존해왔다”고 한 발언이 “미국 고위층을 놀라게 만들었다”며 일본 쪽에 경고했다. 캠벨은 그런 발언이 “미-일 관계를 회복 불능의 위기로 몰아갈 수 있다”며 계속 그런 식으로 가면 “미국의 인내도 한계에 도달할 것”이라고도 했다. 이쯤 되면 협박에 가깝다. 노무현 정권 초기 문제가 됐던 ‘불편한 한-미 관계’라는 것도 이런 식으로 전개된 걸까.
미국은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 사태가 났을 때 일본이 주도한 아시아통화기금(AMF) 구상 때도 비슷한 반응을 보였다. 아프리카에도 아프리카통화기금 구상이 있다. 아프리카 투자은행, 아프리카 중앙은행과 더불어 아프리카 연방 계획 구상의 세 축을 이룬다. 이 아프리카 통합 계획의 주도자가 리비아 지도자 무아마르 카다피다. 아프리카 중앙은행이 독자화폐를 발행하게 되면 세파(CFA) 프랑이라는 공통화폐를 통해 중서부 아프리카 14개국(12개국이 프랑스의 옛 식민지)을 사실상 지배해온 프랑스의 지역패권이 무너진다. 프랑스가 리비아 사태에 왜 그토록 달려들었겠나. 리비아 반군 공세를 프랑스 정보기관이 사주했다는 얘기도 있다.
미국이 동결한 리비아 자산 300억달러가 바로 카다피의 아프리카 통합 구상에 들어갈 돈이었다는데, 카다피는 하루 154만배럴(매장량 470억배럴)의 석유 수출로 번 돈을 무기로 삼아 아프리카 맹주를 꿈꿨다. 미국에도 카다피는 팍스아메리카나 체제의 근간인 석유·달러체제 방위에 위험한 인물이다.
유엔 결의 1973호가 통과되고 서구 연합의 리비아 공습이 시작된 것은 카다피가 서방 석유회사들을 리비아에서 쫓아내겠다며 중국·러시아·인도 석유업자들을 대신 불러들인 직후였다. 중국은 리비아 등 아프리카의 최대 투자자다. 서구 연합의 리비아 개입이 지중해와 아프리카에서 커가는 중국의 영향력을 차단하려는 서구의 전략에 따른 것이라고 한 <알자지라>의 분석은 설득력이 있다.
이처럼 세상은 여전히, 기득권을 지키려는 세력과 이에 반발하며 새 질서를 추구하는 세력이 필사적으로 싸우는 전장이다. 오사마 빈라덴과 ‘테러와의 전쟁’도 그 파생물이다.
비밀전문에서 캠벨은 ‘중국의 위협’을 동아시아 미군 주둔의 가장 큰 이유로 들었다. 동아시아 공동체를 얘기하던 하토야마는 결국 권좌에서 밀려났다. 미국의 견제도 있었지만 미-일 동맹체제에 길들여진 일본내 친미 기득권세력이 그의 발목을 잡았다. 후텐마 기지 협상 때 일본 외무·방위성 관료들은 “지나치게 타협적으로 나가선 안 된다”고 열심히 훈수를 뒀는데, 훈수 대상이 자국 정부가 아니라 미국 고관들이었다. 일본 고관들은 오키나와 미 해병대의 괌 이전 규모를 얼버무리고 이전비용 일본 부담분 66%를 59%로 눈속임할 때도 미국 편에 섰다. 그들이 지키려 한 것은 국민의 이익이 아니라 자신들의 기득권이었다. 주한미군 주둔비와 평택 기지 이전에 관한 외교전문은 위키리크스에 없나.
캠벨이 “한-미 자유무역협정이 발효되더라도 북한에서 생산된 제품을 수입하지 않을 것”이라며 개성공단 제품 한국산 인정 불가 입장을 한국에 통보했다. 그렇게 해서 미국이 유지하려는 한반도 분단은 기득권세력의 이익을 대변하는 옛질서의 상징이다. 현인택 통일부 장관이 “북한산인지 한국산인지는 수입국이 판단할 문제”라며 거기에 맞장구를 쳤단다. 일본 고관들 생각이 난다. 한승동 논설위원
sdh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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