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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문화칼럼] 비정한 오디션 프로그램들 / 김원태

등록 2011-05-13 20:24수정 2011-05-14 14:14

김원태 전남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김원태 전남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슈퍼스타케이>가 성공한 이후 방송사마다 오디션 프로그램이 대유행하고 있다. 문화방송은 <나는 가수다> <위대한 탄생> 등 가수 대상 프로와 아나운서를 뽑는 <신입사원>을 방송중이다. 한국방송은 아마추어 밴드를 대상으로 한 <톱밴드> 프로그램의 참가 신청을 받고 있고, 에스비에스는 탤런트를 대상으로 하는 <기적의 오디션>을 6월부터 방송하기 위해 준비하고 있다.

오디션 프로그램의 유행은 신자유주의하에서 줄세우기와 무한경쟁을 시키며 패자를 ‘왕따’시키는 오늘날의 사회현실과 무관하지 않다. 무한경쟁은 교육계에서 가장 치열하게 벌어지고 있고 어린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큰 문제점을 내포하고 있다. 카이스트 대학생 네 명의 죽음도 안타깝지만, 일부 고등학교의 ‘알짜반’ ‘예비반’ ‘잉여반’ 등의 차별적 운영은 자라나는 청소년들을 멍들게 한다. 이러한 무한경쟁은 정부의 수능 성적 공개와 일제고사 성적 공개가 가장 뚜렷한 자료가 된다. 언론사에서 고교별 일류대 합격자를 발표하고 수능이 끝나자마자 대학과 학과를 상·중·하위권으로 나누어 대학 지원의 지침으로 제공하는 것도 줄세우기의 전형이다.

방송사들이 다투어 오디션 프로그램을 채택하는 것은 출연자들을 신자유주의식 무한경쟁으로 줄세우기 해서 그들을 극적으로 탈락시키면서 긴장감을 높여 시청률을 높이고자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가수>의 경우 요즈음 노래와 가창력 위주로 방송하니까 매번 탈락자들을 가리던 때보다 음악에 대한 몰입도가 커지고 시청률도 더 높아진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나는 가수다’에 출연 중인 가수 김범수
‘나는 가수다’에 출연 중인 가수 김범수
그런데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음악 프로그램은 기존 가수들이 출연하기 때문에 탈락해도 가수 신분이 유지되므로 큰 타격이 되지는 않지만, <신입사원>의 경우는 사원이 되느냐 마느냐가 결정되는 것이므로 이들과 처지가 다르다. 아나운서를 이러한 탈락 경쟁으로 뽑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아나운서는 방송사의 얼굴임과 동시에 바르고 고운 말을 쓰는 사람이라고 하겠다. 그가 쓰는 말은 국민 언어생활의 표준이요 모범이다. 그런데 <신입사원>에서는 그런 사람보다는 재치 있는 사람, 순발력 있는 사람, 재주가 많은 사람을 뽑고 있는 것 같다. 이런 사람들은 아나운서라기보다는 연예인이나 엠시(MC)에 더 가깝다.

상업성을 위해 억지로 서바이벌 방식을 적용하다 보니 무리도 따른다. 이 프로그램에서는 시청자 투표나 방청객 투표가 없이 아나운서들로 이루어진 몇몇 심사위원들이 평가를 전담하기 때문에 오디션 프로그램들 중에서 심사위원들의 영향력과 결정권이 가장 크다. 그들은 응시자들에게 가혹하고 비정한 질문을 퍼붓고 답변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응시자들을 구석으로 몰아세웠다. 응시자들이 당황하고 실수하고 진땀 흘리는 장면들이 불합격 사실과 함께 웃음거리로 공개되고 있는데, 이것은 언론권력의 횡포이며 초상권 침해와 명예훼손, 인격권 훼손에 해당되는 중대한 인권침해 사항이다. 또한 팀별 경쟁에서 탈락한 팀에서 재심사를 통해 다시 일부를 구제하고 나머지 응시자들을 또 탈락시키는 등 붙였다 떨어뜨렸다를 반복하고 있다. 이러한 장면은 탈락자들을 천당과 지옥을 오가게 하는 가혹하고 비정한 모습으로 비친다.

나날이 도가 심해져 가는 무한경쟁과 줄세우기가 방송 프로그램에까지 반영돼 탈락자와 패배자를 비참하게 만들기보다는 연민의 정을 느끼게 하는 프로그램이 되었으면 한다. 살벌한 오디션 프로그램이 살인적 경쟁을 멈추고 진정성을 회복하기를 진심으로 바라 마지않는다.

김원태 전남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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