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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한겨레 프리즘] 변호사와 돈 /여현호

등록 2011-05-17 20:10수정 2011-05-18 13:58

여현호 사회부 선임기자
여현호 사회부 선임기자
어제부터 개정 변호사법이 시행됐다. 새 법엔 정식 이름이 있고 다른 내용이 많은데도, 흔히들 전관예우 금지법이라고 부른다. 전·현직 판검사들로선 억울하겠지만, 법조계에 대한 사람들의 시선이 어떤지 보여주는 대목이라고 봐야 한다.

전관, 곧 판검사 출신 변호사라면 먼저 ‘돈’을 떠올리는 사람들이 많다. 전관을 쓰면 재판에서 유리하겠지만 수임료와 성공보수 등 들어가는 돈이 엄청날 것이라는 게 대다수 사람들의 생각이다. 틀린 얘기는 아니다. 대형 법무법인(로펌)에서 월 1억원 이상을 받은 고위 법조인들이 실제로 있다. 부장판사나 부장검사 출신도 1년에 수억원씩 받는다. 법원 고위직 출신 변호사가 얼마 전까지 100억원대의 연매출을 기록했다는 전설 같은 얘기도 있고, 지난해 퇴임한 검사장 출신 변호사가 가려가며 사건을 맡았는데도 20억원 이상을 벌었다는 소식도 있다. 성공보수를 현금으로 받아 감추는 변호사도 종종 있다니 전관의 수입은 알려진 것 이상일 수 있다. 뻔한 수입으로 살아가는 많은 이들이 반감을 가지는 게 결코 이상한 일이 아니다.

변호사들 사이에선 예전 같지 않다는 볼멘소리도 나온다. 그것도 틀린 말은 아니다. 퇴임한 지 몇 년 지난 전관 변호사들 가운데선 사무실 운영비를 버거워하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 변호사 수가 늘어나면서 예전 같으면 거들떠도 안 볼 낮은 수임료를 감수하는 경우도 많다. 세금 40%에 소속 법률사무소에 내야 하는 비용, 고용 변호사에게 나눠줄 보수 등을 빼고 나면 사건 하나에서 ‘고작 몇백만원’을 손에 쥘 때도 있다고 한다. 물론 그런 사건만 있는 것도 아니고, 다루는 사건이 한두 건도 아니다. 그러니 ‘고작’이란 말이 배부른 투정으로 들린다.

예전 같지 않기는 이제 막 법률시장에 뛰어든 변호사들이 더하다. 국내 7~8위권의 한 로펌은 내년에 졸업하는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 변호사들에게 사법연수원 출신 변호사들이 받는 초임 연봉 1억1000만원(세전 기준)의 절반인 5500만원을 주기로 했다. 세율이 달라 실제 받을 월급은 연수원 출신의 절반이 좀 넘는 400만원 근처다. 다른 로펌도 이에 따를 것으로 보인다. 옛날에 견주면 적겠지만, 웬만한 기업보다는 여전히 높은 수준이다.

로펌에 취직하는 변호사들은 그나마 낫다. 로스쿨이 첫 졸업생을 배출하는 내년에는 법원·검찰을 거치지 않은 신규 변호사가 2000명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 올해의 세 배에 가깝다. 대형 로펌이나 개인·합동 법률사무소, 공공기관, 기업이 신규 변호사의 월급을 깎는 대신 채용을 늘린다고 해도 취업자 수는 800여명 정도일 것이라고 한다. 나머지는 개인사무실을 열어 직접 돈을 벌어야 한다.

이들이 어떤 형편일지는 미뤄 짐작할 수 있다. 2009년의 변호사 1인당 사건 수임건수가 월 1.9건이었으니, 신규 변호사가 늘어나는 내년부터는 더 줄어들 것이다. 치열한 경쟁 속에서 없는 사건을 억지로 구하려면 사건 브로커의 유혹에 빠지기 십상이다. 이미 브로커 수수료가 70% 이상인 경우도 있다고 한다. 그리되면 제대로 돈을 벌기 더 힘들어진다. 변호사 시장의 양극화는 한층 더 뚜렷해질 것이다.

개정 변호사법은 그런 환경에서 시행된다. 변호사들은 이제 전관예우를 대놓고 기대할 수도 없게 됐고, 과거처럼 독과점적으로 쉽게 돈을 벌 수도 없게 됐다. 직원 월급 주는 일조차 힘들어하는 변호사도 흔한 일이 됐다. 그런 상황을 변호사들 말고 이상하게 여길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성싶다. 법률비용이라도 저렴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터에 변호사들이 지금까지와 같은 편한 상황을 계속 유지하려 든다면 헛된 일이 될 수밖에 없다. 괜한 비난만 사게 된다. ‘가난한 변호사’가 왜 있어선 안 된단 말인가.

여현호 사회부 선임기자 yeop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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