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정수 광주광역시 서구의원
시론
광역시 자치구 지방의원으로서 요즘 무기력감을 느낀다. 지방자치가 무슨 필요가 있는 것인지 회의가 든다. 지역 주민을 위해 어떤 일을 하고자 해도 법률에 막히고, 예산에 막힌다. 지역 주민들은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민원을 무수히 제기하는데, 현재의 법과 예산으로는 이를 만족시켜줄 수가 없다.
예를 들어, 2008년 1월27일부터 시행된 ‘어린이 놀이시설 안전관리법’에 근거해 2012년 1월26일까지 말짱한 어린이 놀이시설을 새롭게 교체하거나, 교체할 예산이 없으면 폐쇄를 해야 한다. 안전검사를 받지 않고 계속 이용할 경우 과태료도 아닌 형사처벌을 받게 되는 등 그동안 이 법의 여러 문제점이 제기되었고 현재도 제기되고 있다. 전국적으로 6만여개의 놀이시설이 있는데 2010년 12월 말 기준 36% 정도밖에 교체되지 않았다. 이 문제로 지자체마다 큰 부담을 안고 있다.
또 한-유럽연합 자유무역협정(FTA) 체결로 ‘유통산업발전법’과 ‘상생법’을 무력화하는 해석이 나오면서 중소상인들은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중소상인들은 지방자치의 중요한 요소이다. 대규모 점포와 기업형 슈퍼(SSM)의 무차별적인 점포 확장으로 지역상권과 골목상권이 무너지면 지방재정 또한 피폐해질 수밖에 없다. 주민이 없는 지방자치가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중소상인들은 영업시간 제한, 월 3~4회 휴무제, 품목 제한, 허가제 도입 등 최소한의 방어막을 원하지만 여전히 국회에서는 표류중이다.
위 두 가지 사례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국회의원들이 과연 국민을, 지역 주민을 위한 입법 활동을 제대로 하고 있는지 묻고 싶은 것이다. 지방의회 차원에서 조금이나마 주민을 위한 조례를 만들라치면 지자체는 상위법에 위배될 수 있다면서 방해한다. 국회의원들은 철저히 자본과 중앙정부만을 위한 입법 활동을 하고 있고 지역 주민을 내팽개치는 법만 만들고 있는데, 지자체는 그 잘못된 법안에 위배될 수 있다면서 지역 주민의 입장을 대변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국회에서 국민을, 지역 주민을 위한 입법 활동을 못하겠다면, 과감하게 지방의회로 넘기라. 최소한 지역 주민의 의사와 이익을 보장하는 조례를 만들 수 있게 조례제정권의 범위를 넓히라.
중앙정부와 지자체 간의 잘못된 예산분배 제도로 인해, 30만명의 광역시 자치구 1년 예산이 2400억원대인 반면 인구 10만도 되지 않는 군 단위 1년 예산이 4000억~5000억원대이다. 그래서 광역시 자치구는 자체 예산으로 할 수 있는 사업이 거의 없다. 자치구 지방공무원들도 무기력에 빠져 있다. 광주광역시 서구청을 예로 들면, 1년 예산 2400억원 중 1800억원이 국비·시비 보조금이고, 나머지 600억원 중 500억원 정도가 공무원 인건비와 운영비로 지출된다. 자체 사업을 할 수 있는 예산은 100억원밖에 안 된다.
중앙정부와 국회에서는 예산을 제대로 분배해주지도 않으면서 각종 법률에다 지자체에서 지원해주라는 식의 조항을 만들어 놓고 지속적으로 지자체한테 부담을 전가하고 있다. 1만원으로 심부름을 시키면서 1만5000원어치 사오라는 못된 상사의 심술이다.
그러니 기초단체장은 중앙정부에, 광역시장에게, 국회의원에게 특별교부세나 특별교부금을 달라고 매달릴 수밖에 없다. 이른바 ‘구걸자치’다. 지방자치 20년 동안 이래왔다. 인사권은 넘겨주었으나 예산은 중앙정부가 철저히 쥐고 있으면서 반쪽짜리 지방자치를 계속 유지해오고 있다. 무서운 건 지자체가 거기에 길들여져 있다는 사실이다.
자치단체장들은 더 이상 내가 얼마 따왔다는 식의 자랑만 하지 말고 제도개선 싸움에 나서라. 자식들한테는 고기를 잡아주기보다 고기 잡는 법을 가르쳐줘야 한다면서, 왜 고기 잡는 법인 제도개선 싸움은 하지 않는 것인가?
지방자치시대 실질적인 지역주민들의 의사와 입장을, 그리고 그들의 최소한의 생존을 보호하기 위한 조례와 예산이 될 수 있게 중앙정부와 국회의원, 자치단체장과 지방의원들의 고민과 실천을 요구한다. 류정수 광주광역시 서구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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