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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아침 햇발] 송지선-노무현 두 죽음의 비교연구 / 김종구

등록 2011-05-31 20:24수정 2011-06-01 10:28

김종구  논설위원
김종구 논설위원
두 사람 모두 외부의 압박으로 죽음으로 내몰렸고, 그 죽음은 우리 사회에 심각한 메시지를 남겼다

왜 하필이면 5월23일일까. 송지선 아나운서의 자살 소식을 접하면서 문득 떠오른 생각이다. 공교롭게도 그날은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2주기가 되는 날이었다. 2년을 사이에 두고 같은 날 두 사람이 투신이라는 극단적 방식을 통해 세상과 작별을 고했다.

두 죽음을 같은 선상에 놓고 보는 것은 무리일 수 있다. 전직 대통령과 젊은 아나운서라는 차이, 거기에 먼지털기식 수사와 남녀 연애 사건 등 비극의 시발점도 다르다. 그럼에도 밑바탕에는 뭔가 공통의 흐름이 존재하는 것만 같다. 두 사람 모두 외부의 압박으로 죽음으로 내몰렸고, 그 죽음은 우리 사회에 심각한 메시지를 남겼다.

권력은 무자비하다. 이번 사건을 통해 다시 한번 절감하는 명제다. 대중, 언론, 회사, 검찰 등 두 사건에 등장하는 권력들은 피도 눈물도 없었다. 그러면서도 추호도 책임을 지지 않는다. 개인적인 추정이지만 송 아나운서에게 ‘최후의 일격’을 가한 것은 엠비시스포츠플러스 회사였다. 그가 투신한 날이 바로 회사 쪽의 징계 결과 발표일이라는 것이 결코 우연으로 보이지 않는다. 벼랑 끝에 서 있는 사람은 손가락으로 살짝만 밀어도 떨어진다. 물은 섭씨 99도까지도 끓지 않지만 1도만 더 올라가면 끓어 넘친다. 회사의 징계는 아무리 낮춰 잡아도 마지막 1도의 역할을 한 셈이다. 노 전 대통령 사건에서 찬물을 데워 비등점까지 끌어올린 검찰에 비하면 죄과가 훨씬 미약하지만 말이다.

언론은 이번 사건에서도 역시 지대한 역할을 했다. “트위터 한 자 한 자가 기자들의 먹잇감이 될 줄은 몰랐다”는 고인의 글이 이를 웅변한다. 그러면 언론은 앞으로 이런 사안이 나올 때 좀더 사려깊고 신중하게 행동할 것인가. 그런 기대는 일찌감치 접는 게 좋다. 노 전 대통령 죽음에 일조한 언론들은 평소 고상함을 입에 달고 사는 이른바 이 사회의 주류언론들이다. 그러나 그 후 행태를 보라. 하물며 유명인의 스캔들로 먹고사는 연예·스포츠 전문 언론들에 그런 기대를 하는 것은 무망한 노릇이다.

유명인사들에 대한 누리꾼의 악의적인 공격의 폐해 역시 치유가 불가능해 보인다. 그것은 이제 우리 사회의 슬프지만 확고한 병통으로 자리잡았다. 요즘 <나가수>에 출연한 가수 옥주현씨를 향한 무자비한 융단폭격을 보면 이제 유명인들은 마음을 굳게 먹고 스스로 강해지는 방법밖에 없어 보인다.

이번 사건의 와중에 방송에 나와 “7살 차이면 애 데리고 논 거야” 따위의 막말을 한 사람들이 있다. 이 프로그램을 방영한 케이비에스조이 쪽은 곧바로 해당 코너 폐지와 발언자의 출연 정지를 결정했다. 따지고 보면 이런 발언은 “노 전 대통령이 자살한 건 거액 차명계좌가 발견됐기 때문”이라는 조현오 경찰청장의 망언보다 죄질이 더 무겁다고 할 수도 없다. 조 청장의 임명을 강행한 청와대나, 사자명예훼손 사건 수사를 10개월 가까이 미적거리는 검찰에 비하면 케이비에스조이 쪽이 훨씬 대견스럽다.

이제 마지막으로 ‘불경죄’를 무릅쓰고 임태훈 선수와 이명박 대통령을 도마 위에 올려놓을 차례다. 송 아나운서 자살에 임 선수의 책임이 얼마나 있는지를 형량하기란 쉽지 않다. 비극의 출발점이 임 선수에서부터 비롯된 측면은 분명히 있겠지만 지금 그에게 쏟아지는 십자포화는 도를 넘어선 느낌이다. 같은 ‘과거 부정’이라고 해도 임 선수와 이 대통령의 책임은 질을 달리한다. 그런데 한 사람은 야구선수 생명까지 위협받는 반면에 한 분은 어느새 전임 대통령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대통령이란 사실이 잊혀가는 것 같다. 이것은 공정사회가 아니다.


김종구 논설위원kj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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