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재철 한국고용복지센터 이사장 전 청와대 노동비서관
경제가 성장하면 일자리가 생기는 게 아니라,
일자리를 만드는 것이 가장 효과적인 경제성장 수단이다
일자리를 만드는 것이 가장 효과적인 경제성장 수단이다
외신 보도에 따르면, 한국이 2008년에 발생한 국제 금융위기를 상대적으로 빨리 그리고 성공적으로 극복했다고 한다. 실제로 경기부양을 위한 막대한 규모의 재정지출과 고용유지 지원 등의 신속한 조처를 통해 금융위기 때에도 고용은 극단적인 상황으로 치닫지는 않았다. 한국이 주요 20개국(G20)의 선도국가로 도약했다고 정부가 자평하는 주요 근거 중 하나다.
정부의 자평에 적지 않은 국민들은 시큰둥한 반응이다. 국민이 피부로 느끼는 일자리 문제는 개선되기는커녕 오히려 악화되고 있다.
경제가 정부의 목표 성장률을 달성하더라도 일자리는 필요한 만큼 만들어지지 않으며, 새로 만들어지는 일자리는 주로 비정규직 등 근로조건이 열악하고 고용도 불안정한 경우가 많다. 구직난이 심화되어 구직을 단념하거나 구직시험 준비에 뛰어드는 청년들이 빠른 속도로 늘어가는 반면, 일자리 창출을 명분으로 초임을 낮춘 공기업에서 청년 일자리가 많이 만들어졌다는 소식은 들리지 않는다. 베이비붐 세대의 은퇴를 대비해 중장기적인 대안을 마련하자던 노사민정의 대화도 결실을 맺지 못한 것처럼 보인다. 노동시장을 비롯한 사회 전반에 활력이 떨어지고 있지만 희망의 불씨는 아직 찾아보기 힘들다.
희망을 보지 못하는 게 정부 및 정책에 대한 국민의 지지와 신뢰가 약해지고 있는 주요 원인이다. 정부가 일자리를 2011년 국정 최우선 과제로 삼아 범정부적 역량을 결집하겠다고 선언한 것은 이러한 상황이 강제한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고용률과 근로생활의 질을 높여서 ‘일을 통해 함께 잘사는 공정사회’를 이루겠다는 목표는 일자리 부족과 일을 하고 싶어도 일자리를 구하기 어려운 취업애로계층이 급증하는 현실을 반영한 것이다.
정부의 현실 인식과 전략에는 동의하지만, 이것을 진정한 의미의 정책 전환으로 보기 위해선 검토해야 할 것이 있다. 무엇보다 정부의 ‘비즈니스 프렌들리’ 정책이 더 많은 일자리를 만들고 근로생활을 획기적으로 개선했는지에 대한 엄정한 평가가 필요하다.
우선 지적할 것은 경제성장이 일자리를 만드는 유일한 방법이라는 이 정부의 철학이다. 이런 철학을 유지하는 한, 정책 목표를 어떻게 설정하더라도 일자리 정책의 수단은 각종 구조적인 문제를 해결하기보다 오히려 어렵게 하거나 대증요법에 그칠 가능성이 크다. 경제가 성장하면 일자리가 생긴다는 성장지상주의 관점에서 벗어나, 이제는 일자리를 만드는 게 경제성장을 해야 하는 핵심 이유이며 일자리를 만드는 것이 가장 효과적인 경제성장 수단이라는 방향으로 패러다임의 변화가 절실하다.
기업의 행태도 문제다. 수많은 수출 중심 대기업들은 국제경쟁력을 빌미로 공장을 주로 해외에 신설하는 반면, 국내에서는 유동성 위기에 대비한다는 명분으로 천문학적 규모의 이익을 축적하고 이를 배당이나 인수·합병(M&A) 자금으로 활용하고 있다.
물론 이것이 모든 대기업의 행태는 아닐 것이다. 그렇지만 이런 행태는 양질의 일자리를 만들고 근로생활의 질을 개선하려는 노력, 그리고 내수 확대를 통한 경기회복과는 어울리지 않는 일임이 분명하다. 탈규제의 확대가 아니라 사회적·정치적인 재규제가 필요한 시점이다.
기업은 노동력의 핵심적인 수요자다. 그래서 이들의 행태가 변하지 않는다면 대기업이 중소기업과 동반성장하고, 비정규직 등 취약계층의 근로조건이 그들이 기여한 만큼 개선되긴 어렵다. 또 국가경제가 발전하는 만큼 국민의 삶의 질이 향상되는 ‘공정한 사회’를 향한 정부의 노력도 사상누각이 될 것이 분명하다. 이제라도 국민의 삶의 질과 일자리에 ‘프렌들리’하게 접근하는 진정성이 담긴 정책을 기대해 본다.
기업은 노동력의 핵심적인 수요자다. 그래서 이들의 행태가 변하지 않는다면 대기업이 중소기업과 동반성장하고, 비정규직 등 취약계층의 근로조건이 그들이 기여한 만큼 개선되긴 어렵다. 또 국가경제가 발전하는 만큼 국민의 삶의 질이 향상되는 ‘공정한 사회’를 향한 정부의 노력도 사상누각이 될 것이 분명하다. 이제라도 국민의 삶의 질과 일자리에 ‘프렌들리’하게 접근하는 진정성이 담긴 정책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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