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원 일본 릿쿄대 법학부 교수
일본 내 논의 과정에는 “무언가를 두려워하는 듯한 불건전한 공기”가 떠돌았다
5월27일 우여곡절 끝에 한-일 도서협정이 일본 참의원에서 승인되었다. 조선총독부에 의해 일본으로 반출된 <조선왕실의궤>를 포함한 귀중한 고도서 1205책의 반환을 규정한 협정이다. ‘의궤’가 일본으로 반출된 것은 1922년이며 89년 만에 한국으로 돌아오게 된다. 일본으로 유출된 한국 문화재 6만1409점(한국 문화재청 발표)에 비하면 약소한 숫자지만, 1965년의 한-일 협정 이후 가장 큰 규모의 문화재 반환이 실현되었다는 점은 평가할 만하다.
상징적 의미도 크다. 조선왕실의궤가 일본 궁내청으로 반출된 것은 3·1 독립운동으로 흔들리는 식민지 지배 체제를 강화하기 위해 내선융화정책의 일환으로 조선왕실을 천황제의 일부로 흡수하고자 하는 정책이 배경에 있었다. 문화재 반환을 추진해온 일본 시민단체 대표이기도 한 역사학자 아라이 신이치 이바라키대학 명예교수가 한-일 도서협정을 심의하는 일본 중의원 외무위원회에서 참고인으로 행한 진술이다. 이런 배경이 있는 도서의 반환은 식민지 지배의 청산으로 연결되며 한-일 간의 역사 화해를 촉진하는 토대가 된다고 아라이 교수는 역설했다.
도서 반환은 지난해 8월 한국병합 100년을 맞이한 간 나오토 총리의 담화에서 약속된 사항이었다. 그러나 그 실현까지는 1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다. 일본 민주당 정권은 병합 100년을 맞이한 2010년 중에 반환을 실시하고, 이같은 역사문제의 일정한 조처를 발판으로 안보협력을 포함한 한-일 신공동선언 등 한-일 관계의 강화를 추진한다는 구상을 가지고 있었다. 일본의 전략적 포석임과 동시에 민주당 정권의 외교적 실적을 의식한 것이기도 했다.
그러나 정권 기반이 취약한 민주당 정권은 이를 추진할 정치력이 없었다. 지난해 11월14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아펙) 정상회의 참석차 방일한 이명박 대통령과 간 총리가 협정에 조인은 했지만, 자민당의 반대로 의회 비준 심의는 상정조차 하지 못하는 상황이 계속되었다. 지난 4월부터 겨우 심의가 시작되었지만 자민당의 저항으로 5월22일 한-중-일 정상회담에 맞추어 도서 반환을 실현하려는 간 내각의 계획도 좌절되었다. 일본 의회의 심의과정을 보면서 한-일 간의 깊은 골을 새삼 통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 자민당 보수파 의원들의 반대에는 민주당 정권의 발목을 잡으려는 정치적 동기도 물론 있었다. 또한 앞으로도 쏟아져 나올지 모르는 문화재의 추가 반환 요구에 대한 경계감도 두드러졌다. 방어적 심리가 공격적 논리로 전화되어, 한국에 남아 있는 일본의 관련 문서, 일본에서 도난되어 한국으로 건너간 문화재 등에 대해서도 대항적으로 반환 요구를 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되었다. 독도 문제에 관한 한국 정부의 양보를 얻어내는 수단으로 활용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의원과 참고인도 있었다. 5월27일 아라이 교수가 기자회견에서 지적한 대로 이번 도서협정에 이르는 일본 내의 논의 과정은 미래지향의 희망보다는 “무언가를 두려워하는 듯한 불건전한 공기”가 떠돌고, 개운치 않은 뒷맛을 남긴 것은 사실이다.
기대를 할 수 있는 것은 양국 시민사회의 역량과 의식이다. 이번 도서 반환도 두 나라 시민단체의 꾸준한 노력의 결실이다. 양국 정부는 이런 시민들의 움직임에 등을 떠밀린 부분이 적지 않다.
조선왕실의궤는 이르면 이번 광복절에는 한국으로 돌아올 것이다. 그 후 미뤄져온 이 대통령의 최초의 국빈 방일과 한-일 신공동선언이 예정되어 있다고 한다. 양국의 ‘새로운’ 관계 설정 속에서 ‘미완의 과제’들을 어떻게 풀어갈 것인지 정부와 국민이 같이 생각해야 할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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