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별아 소설가
마지막으로 받은 답장은 ‘푸른 꽃 현호색, 비몽사몽 빛이구나!’였다
초여름의 태백산은 우글우글한 나무와 도글도글한 꽃 천지다. 겨우내 삭정이만 같았던 나무들이 저마다 잎을 돋워 생령을 주장하고, 언 땅을 뚫고 오르기에 너무 여려 더욱 애틋한 꽃들이 곳곳에서 눈망울을 반짝거린다. ‘이름 모를’ 것들은 있을지언정 ‘이름 없는’ 것들은 없다. 공원관리사무소에서는 친절하게도 나무마다 안내판을 걸어 놓고 “이름을 불러주세요!”라고 부탁한다. 층층나무, 당마가목, 회나무, 노린재나무, 사스래나무, 시닥나무…. 부탁대로 그들의 이름을 속삭이노라니 가슴이 문득 푸르러진다. 사람의 마을에선 좀처럼 보기 어려웠던 야생화들과는 숲 해설가인 길벗의 도움을 받아 통성명한다. 금강애기나리, 개별꽃, 홀아비바람꽃, 노랑무늬붓꽃, 큰앵초…. 풀숲에 숨은 작은 꽃들은 숨을 고르고 몸을 낮춰야 볼 수가 있다. 아는 만큼 보이고 사랑하는 만큼 이해한다.
그런데 종전에 내가 가졌던 꽃에 대한 태도를 생각하면 때아닌 꽃 타령이 열없긴 하다. 가차없이 말하자면 꽃은 속씨식물의 생식기관에 다름 아니라고 냉소하며, 꽃바구니 선물 앞에서 “꽃보다 사과!” 혹은 “꽃보다 멸치!”를 두덜거리기도 했다. 힘들여 노작하는 화훼 농가에 미안한 것을 제외하면 이런 건조한 실용주의를 반성할 마음도 별로 없었다. 꽃이 의미하는 열망과 호기심과 희망이 삶에 어떤 위로가 되는가를 깨닫기 전까지는.
지난 3월 ‘세상읽기’ 지면에 ‘모든 순간이 꽃봉오리인 것을’이란 제목으로 실었던 사연의 주인공, ‘부미방’의 주역이자 <밥 딜런 평전>의 번역가이자 내겐 곱고 다정한 언니였던 작가 김은숙이 열흘 전 마침내 세상을 떠났다. 수술로도 손쓸 수 없는 말기 암으로 시한부 6개월을 선고받았지만 주위의 응원에 힘입어 두 달가량을 더 견디고 갔다. 덤받이와 같았던 그 두 달 동안 지인들은 안타까운 마음에 후원 행사를 열기도 했지만 낯가림이 있는 나는 그저 조용한 작별 인사를 하고 싶었다. 그런데 막상 병원으로 찾아가는 길에 나는 좀 당황했다. 아무것도 언니를 위해 가져갈 게 없어서, 무엇으로도 마지막 순간을 목전에 둔 이를 위로할 수 없어서. 외로울 것이었다. 분노, 억울함, 슬픔이 사라진 자리에 남은 것은 오직 지독한 외로움뿐일 것이었다.
그래서 꽃을 샀다. 복국을 사다 줘도 두어 숟갈조차 뜨지 못하고 책을 가져가도 읽지 못할 터이기에, 꼭두새벽부터 꽃집의 문을 두드려 프리지어 한 다발을 샀다. 언니는 그것을 내가 건넸던 어떤 선물보다 좋아했다. 병실에 꽃병이 없어 탁자 위에 그냥 놓아두려니 기어코 꽃을 꽂아두고 보고 싶다며 난데없는 고집까지 피웠다. 서울 면목동 주택가엔 꽃병을 파는 가게가 없었다. 꽃병 비슷한 거라도 찾으려고 골목골목을 헤매노라니, 언니가 떠나면 아마도 이것이 가장 선명한 추억이 되리라는 생각에 장례식에서도 나지 않은 눈물이 올칵 솟았다. 그리하여 그때부터 헤어지기 얼마 전까지 우리는 시시때때로 꽃을 주고받았다. 아파트 화단에 제일 먼저 맺힌 목련, 산책길에 눈처럼 흩날리던 벚꽃, 길섶의 제비꽃과 소백산 자락에서 만난 현호색까지. 휴대전화 카메라로 사진을 찍어 문자로 전송하면 언니는 병석에서도 삶의 신호를 보내왔다. 마지막으로 내가 받은 답장은 ‘푸른 꽃 현호색, 비몽사몽 빛이구나!’였다.
꽃, 꽃이, 꽃이로구나…. 이진명의 시구를 가만히 중얼거린다. 별안간 꽃이 사고 싶은 것, 그것이 꽃 아니겠는가…. 시인은 그렇게 가난한 마음을 위로한다. 꽃은 언제고 피었다 지고 다시 피기 마련이기에, 이별이라고 다 슬프지 않다. 언젠가는 우리 모두 꽃밭에서 만날 것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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